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산 3-1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한편 오랜 세월동안 진흥왕순수비는 무학대사의 비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학이 도읍을 정하기 위해 산 속을 헤매다 이곳까지 왔을 때 비석에 쓰여 있는 "無學誤尋到此"(무학이 잘못찾아 이곳까지 왔다)라는 글귀를 보고 급히 내려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비석의 실체는 잘못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비석이 진흥왕의 순수비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16년 추사 김정희에 의해서였다. 추사는 두 번에 걸친 고증 끝에 이 비석의 실체를 밝혀냈고 그 자부심으로 비석 측면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넣었다.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이 진흥대왕 순수비는 병자년(1816년) 7월에 김정희 김경연이 와서 읽었다.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六十八字 정축년(1817년) 6월 8일에는 김정희 조인영이 같이 와서 읽을 수 있는 68자를 정하였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북한산
문화자원명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종로구
자원세부내용
북한산에 세웠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의 옛 자리이다. 진흥왕 순수비는 삼국시대 최대의 요충지였던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항쟁의 상징물이다. 서기 553년 진흥왕은 나제동맹을 깨뜨리고 백제를 기습공격하여 한강유역을 탈환한다. 북한산지역은 한강유역의 방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기에 진흥왕은 자신이 새로 개척한 영토를 둘러본 기념으로 북한산 비봉 정상에 순수비를 세운다. 비문은 모두 12행이나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지만 왕이 지방을 이곳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을 기록하고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568년(진흥왕 29) 이후 진흥왕 생존 당시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오랜 세월동안 이 비를 무학대사의 비석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은 것이 추사 김정희이다. 원 비석은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는 모조비를 세워 놓았다. 비를 세운 자리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국립공원역사문화자원 자료집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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