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VWorld 지도 이미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 경상남도 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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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화자원내용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진감선사 사후 887년(진성여왕 원년) 그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 이 비를 세웠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의 글씨로써 비문도 직접 지었다.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 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관리주체
종교
국립공원
지리산
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문화자원명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영문주소
59 Ssanggyesa-gil, Hwagae-myeon, Hadong-gun, Gyeongsangnam-do
우편번호
52,302
자원관리자
쌍계사
자원세부내용
통일신라 후기 유명한 승려였던 진감선사의 일대기를 당대 대표 문인인 최치원이 직접 지은 탑비이다. 그가 입적한 이후인 887년(진성여왕 원년)에 수도처인 옥천사를 ‘쌍계사’로 사찰명을 고치고서 이 탑비를 세웠다고 한다. 진감선사(774∼850)는 서기 804년 (신라 애장왕 5년) 승려가 되어 당나라에 유학하여 공부한 후 830년(흥덕왕 5년) 귀국하였다.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켰으며,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존경을 받다가 77세 나이로 쌍계사(당시 옥천사)에서 입적하였다. 비석의 몸돌에 일부 손상이 있으나, 거북 받침돌과 용 문양 머릿돌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 양식처럼 거북 받침돌은 머리를 용머리로 꾸몄고 등에는 6각 무늬를 새겼다. 등 중앙에는 비석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직하게 있는데 그 네 면마다 구름무늬가 있다. 머릿돌은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을 담고 있으며, 머릿돌 앞면 가운데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석 명칭이 남아 있다. 머릿돌의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 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을 올렸다.
자원소유자
쌍계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사찰(지)
지번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참고문헌
-쌍계사 성보문화재원구원2004『삼신산쌍계사지』 -국립공원관리공단2009『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 -문화재청 Web-site(http://www.cha.go.kr)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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