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

경주 남산 은적암 풍수지리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은적암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하기 전에 잠시 은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의 향토유학자인 유의건(1687~1760)은 화계집(花溪集)에 '은적암이 허물어져 30년이 지난후, 천룡사 승려 채원이 발원하여 암자를 중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풍수가(堪輿家)의 말을 인용하여, '이 암자는 천룡사와 꼭 저울추 모양으로 마주하고 있으므로, 천룡사의 흥망이 이 암자에 달려있다'고 하여 두 절이 서로 응결된 기맥이 통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적암은 지리적으로는 용장계에 속해있고 용장사와 깊은 인연이 있으나, 천룡사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적암은 조선시대에 천룡사의 말사로서 한차례 중건되기도 하였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경주 남산 은적암 풍수지리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은적암은 경주 남산 용장계 은적골의 4사지로, 절터에는 4단의 축대와 허물어진 건물지가 있고, 탑부재 3개와 추정 석등지대석, 초석들이 있다. 그리고 옥개석 2개는 열반곡 관음사에 옮겨져 있다. 은적암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하기 전에 잠시 은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때부터 법통이 유지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에는 존속하다가 18세기에 한차례 중수되었고, 천룡사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19세기 전후한까지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의 향토유학자인 유의건(1687~1760)은 화계집(花溪集)에 '은적암이 허물어져 30년이 지난후, 천룡사 승려 채원이 발원하여 암자를 중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풍수가(堪輿家)의 말을 인용하여, '이 암자는 천룡사와 꼭 저울추 모양으로 마주하고 있으므로, 천룡사의 흥망이 이 암자에 달려있다'고 하여 두 절이 서로 응결된 기맥이 통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적암은 지리적으로는 용장계에 속해 있고 용장사는 물론이고, 천룡사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5, , 민족문화 유의건(柳宜健),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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