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 54-1
영문주소
806-16 Piagol-ro, Toji-myeon, Gurye-gun, Jeollanam-do

연곡사 고광순 순절비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1848~1907, 전라남도 창평출신의 한말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초명은 광욱(光旭) 또는 광순(光珣, 광(光詢),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이다. 고광순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고, 기우만(奇宇萬)과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에 추대 되었다. 나주를 본영으로 의병을 불러 모으자 일본군이 나주로 집결하므로 광주로 옮기고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북진하던 중 선유사(宣諭使)의 권고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1906년 4월 최익현의 순창 거의(擧義)소식을 듣고 고제량과 순창에 이르렀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다시 기우만, 백낙구와 모사하였으나, 그들도 곧 붙잡혔다. 1907년 1월24일 저산(猪山)의 제각에서 제량, 광훈 등 족친들과 윤영기, 박기덕 등과 거의 하였다. 12월 말 남원의 양한규와 남원 합락을 계획, 남원성을 공격하여 관군과 접전하였으나 양한규의 전사와 남원진의 붕괴로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凌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습격하였다. 그뒤 지리산 문수암을 거점으로 활약하던 김동신과 연합작전을 구상, 지리산으로 집결하였다. 그동안 그의 종가는 적의 습격으로 사당만 화를 면하였을 뿐 피해가 컸다. 8월 구례 연곡사로 가서 화개동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대원들을 머무르게 한 뒤, 군대훈련과 군량을 보충한 뒤 불원복(不遠復) 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의기를 북돋우었다. 그 뒤 지리산을 거점으로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적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당하여 9월 부장인 고제량을 비롯하여 주요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관리주체
종교
국립공원
지리산
문화자원명
연곡사 고광순 순절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연곡사
자원세부내용
이 비는 현각선사탑비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순절한 고광순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1958년에 세운 것이다. 글은 김문옥이 짓고 김규태가 글씨를 썼다. 전면에「의병장(義兵將) 고공광순순절비(高公光洵殉節碑)」라 쓰고 뒷면에는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비신총고 141㎝, 폭 61㎝) - 구례군지편찬위원회 2005 구례군지
자원소유자
연곡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사찰(지)
지번주소
참고문헌
기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