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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 4-1

속리산 산신제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속리산신의 개념 속리산 산신제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 : 속리산(俗離山) 꼭대기에 있는데 그 신(神)이 매년 10월 범날에 법주사(法住寺)로 내려오면 산중사람들이 음악을 베풀어 신을 맞이하여 제사하고 40일 동안 머물게 한 뒤에 돌려보낸다 하여 속리산 대자재천왕사의 위치와 제일(祭日)과 제의(祭儀)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대자재천왕사는 대자재천왕을 모신 신당을 뜻하고 있는데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이란 신은 인도불교의 외도에서 신체로 섬기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규태(李圭泰)는,대자재천신(大自在天神)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 이 시바(siva)신의 신사(神祠)는 한말 때까지 속리산 법주사에 남아 있었다. 불교에 묻어 등 시바의 성신숭배(性神崇拜)가 한국에 토착화하여 부근숭배(付根崇拜)가 된 케이스이다 하여 인도 시바(siva)敎의 주신인 대자재가 우리나라에 불교와 함께 들어와서 속리산에 토착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자재(大自在)’란 말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들어온 것만은 확실하지만, 우리나라의 성기신앙은 인도의 대자재에서 전래된 것은 아니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우리나라에도 선사시대부터 성기신앙이 있었으며 사람이 여자의 성기에서 태어나는 신비와 외경에서 여근을 생명의 근원으로 신성시하면서 주술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신격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속리산에 있었다는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를 우리나라 고유의 성신(性神)을 모신 사당으로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성신앙은 옛날부터 있어도 남근은 거의가 주술적 또는 공물로 바쳐진 것이지 그것을 주신으로 모신 사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는 속리산신사(俗離山神祠) 또는 속리산천왕사(俗離山天王祠)의 잘못된 표기이다. 그리고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가 있었다는 속리산 봉우리는 속리산의 아홉 봉우리 중에도 천황봉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천황봉이 속리산의 주봉일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산중사람들이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황봉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 복천암(福泉庵)의 동쪽을 내산(內山)이라 하고 법주사(法住寺)의 위쪽을 외산(外山)이라 한다. 내산에는 돌이 많고 흙이 적으며 외산에는 흙이 많고 돌이 적다. 그리고 내산에서 뛰어난 산은 비로봉(毘盧峰)과 천왕봉(天王峰)이고 외산에서 우뚝한 것은 문장대(文藏臺)다. 하여 ‘천왕봉’이라 하였고 이 밖에도 조식(曺植)의 시, “請着千石鐘 非大叩無聲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 허훈(許薰)의 시 “天王北踞星長拱 世祖南巡草木知” 에서도 모두 ‘천왕봉’이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천황봉은 천왕봉에서 변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천왕(天王)’이란 말은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천신이 하강하여 지상에 군림하면 ‘천왕’이라 하였고, 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온 천신 즉 산신도 흔히 천왕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속리산 천왕봉은 ‘산신이 있는 봉우리’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속리산 천왕봉에도 속리산신을 모신 사당이 있었고 그 이름은 ‘속리산천왕사’이었을 가능성이 틀림없다. 속리산신제의 원형 - 제의의 형식과 내용 제일(祭日)이 “매년 10월 범날”이라 한 것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천신제인 ‘무천(舞天)’이나 ‘동맹(東盟)’, 고구려의 ‘수신제(隧神祭)’와 한의 ‘귀신제(鬼神祭)’가 모두 10월에 지냈으며, 오늘날 동제도 10월에 많이 지내고 있는데, 이것은 10월을 상서로운 달로 여기는 우리의 풍속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의 제의는 본래 봄에는 기원하는 춘기제(春祈祭)를 지내고 가을에는 감사하는 추보제(秋報祭)를 지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춘기제는 생략되고 추보제만 행하는 경향이 있어 속리산신제도 본래는 춘추로 행하던 제의가 후대에 추보제인 10월제만 행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범날은 속리산신을 여신으로 이해하기 이전에 속리산신을 범신으로 이해했던 시기의 속리산신제를 10월의 첫 범날 즉 상인일(上寅日)에 지냈던 유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신(神)이 법주사로 내려오면”은 속리산 산중사람들이 천왕사에서 맞이한 것이 아니라 법주사에서 맞이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최남선(崔南善)의 조사에 법주사에 남근을 바치는 신당이 따로 있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며 부처를 모신 법주사에 산신당과 별도로 속리산신당이 세워진 것은 이은상(李殷相)이, 이 산 아래 佛敎가 들어오고 거기다 미륵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실상은 여기가 천왕(天王)의 도장(道場)이었던 것이다. 하였듯이 속리산은 법주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천왕(天王), 즉 속리산신이 자리한 도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한편 불교가 민속신앙을 수용하여 호법신(護法神)으로 수용하는 종교적 특징에서 더욱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산중사람들이 음악을 베풀어 신을 맞이하여 제사하고” 한 것은 제의가 오늘날처럼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이 마을을 대표하여 유교식(儒敎式)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무당들이 주제하는 천왕굿으로 진행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40일동안 머물게 한 뒤에 돌려보냈다”고 한 것은 산신제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10월초부터 동지(冬至)까지를 기간으로 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속리산신제는 본래는 춘추로 제사를 지냈으나 후대에 추보제인 10월제만 지내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천왕봉에서 신을 맞이하여 천왕굿을 하다가 법주사에 속리산신당이 세워지면서는 법주사 신당에서 신을 맞이하여 천왕굿을 하였는데, 산신을 범신으로 인식하였던 시기에 범날에 제사를 시작하여 동지(冬至)까지 지내던 제사기간이 후대에 45일간으로 바꾸었다. - 남근공의의 의미 문헌 기록에는 없지만 이능화(李能和)와 최남선(崔南善)의 조사에 의하면 속리산신제에서 산중사람들이 신에게 나무로 만든 남근을 바쳤다고 하였다. 이렇게 신에게 남근을 바치는 것은 일찍이 고구려에서 나라의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수혈(隧穴)이라고 한다. 10월 국중대회(國中大會)에서 이 수신(隧神)을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 위로 옮겨 신좌(神座)에 나무로 만든 수신을 모셔놓고 제사한다. 하였는데 여기서 수혈(隧穴)은 구멍을 뜻하고, 구멍은 대지를 여성인 지모신(地母神)으로 이해했던 고대의 농경사회에서 지모신의 여근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신좌에 나무로 만든 수신(隧神)을 모셨다는 것은 바로 나무로 만든 남근을 바쳤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대지의 지모신에게 남근을 공물로 바쳤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여신에게 남근을 바치는 것은 모방주술(模倣呪術)이며, 또 주술은 상징적 의미에서 소원의 표현이기 때문에 생산의 신성이 있는 여신에게 성력(性力)이 있는 남근을 바침으로 해서 신성혼인(神性婚姻)에 의한 효과적인 생산 내지는 풍요를 기원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따라서 속리산신제에서 남근을 바쳤다는 것은 바로 속리산신을 여신으로 이해한 것이고, 또한 속리산 산중사람들은 속리산 여신에게 남근을 바친 것은 풍요를 기대하는 주술적 기원이다. 출처 : 문화원 홈페이지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속리산
문화자원명
속리산 산신제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0
자원관리자
보은군(문화원)
자원세부내용
현재 속리산산신제는 매년 10월에 속리축전의 하나의 행사로 열리고 있으며, 산신제는 영신행차, 연안무, 살풀이, 산신재 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신재가 열리는 날에 천왕봉산신맞이 등반대회, 송이놀이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열린다. 속리산 산신제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속리산(俗離山) 꼭대기에 있는 신(神)이 매년 10월 범날에 법주사(法住寺)로 내려오면 산중사람들이 음악을 베풀어 신을 맞이하여 제사하고 40일 동안 머물게 한 뒤에 돌려보낸다고 소개되어 있다. 속리산신제에서 산중사람들이 신에게 나무로 만든 남근을 바쳤다고 하는데 속리산신제에서 남근을 바쳤다는 것은 속리산신을 여신으로 이해한 것이고, 또한 속리산 산중사람들은 속리산 여신에게 남근을 바친 것은 풍요를 기대하는 주술적 기원이다. 속리산신제는 본래는 춘추로 제사를 지냈으나 후대에 추보제인 10월제만 지내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천왕봉에서 신을 맞이하여 천왕굿을 하다가 법주사에 속리산신당이 세워지면서는 법주사 신당에서 신을 맞이하여 천왕굿을 하였는데, 산신을 범신으로 인식하였던 시기에 범날에 제사를 시작하여 동지(冬至)까지 지내던 제사기간이 후대에 45일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기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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