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224
영문주소
364-13 Bukhansan-ro, Deogyang-gu, Goyang-si, Gyeonggi-do

효자동 박태성정려비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효자 박태성과 호랑이 이야기 전설' 소문난 효자인 박태성이란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삼년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묘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그날따라 눈보라가 매우 휘날렸는데 그는 그런날씨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묘를 향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던 그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으..여기서 쓰러지면 안되는데..." 자신의 몸보다 아버지의 효를 먼저 떠올린 그였다. 그렇게 점점 의식이 흐려질때 설상가상 커다른 호랑이가 그 앞에 나타났다. 그때 박태성은 겁은 커녕 큰 소리로 호랑이를 꾸짖었다. "이놈! 아버지의 묘에 문안 드리러 가는 이를 먹으려 왔으냐!" 그러자 호랑이는 말을 알아 들었는지 자기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걸 알아챈 그는 호랑이의 등에 올랐다. 그러자 호랑이는 쏜살같이 뛰더니 묘까지 안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돌아올때까지 기다려 그를 태워 마을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후 호랑이는 매일 박태성을 태우고 묘를 왔다 갔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년상이 끝나는 날이 왔다. 박태성은 호랑이를 안고 울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훗날 나도 여기에 묻힐 진데 죽는 날까지 널 잊지 않으마" 호랑이도 눈물을 흘렸다. 몇달 후 박태성은 건강이 나빠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언대로 그는 아버지의 묘 옆에 묻혔다. 그 후 어느날 한 마을 사람이 박태성의 묘 옆에 죽은 호랑이를 발견했다. 바로 박태성을 태워주던 호랑이였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이더니 저마다 가죽을 벗기자고 말했는데, 한노인이 조용히 조렸다. "이 호랑이는 박태성을 태우고 다녔던 호랑이야. 그를 그리워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양이야.." 말을 마치자 사람들은 박태성 묘 옆에 호랑이를 묻었다. 그 박태성으로 인하여 마을이 효자리로 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세개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고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북한산
문화자원명
효자동 박태성정려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고양시
자원세부내용
효자동 박태성 정려비(朴泰星旌閭碑)는 북한산성에서 의정부로 이어진 53번 지방도로 제청말 입구에 있다. 오석의 비에는 '조선효자 박공태성 정려지비(朝鮮孝子 朴公泰星 旌閭之碑)'라 표기되어 있는데, 대좌까지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효자로 널리 알려진 박태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1893년(고종 30)에 건립되었다. 효자비에서 250m 떨어진 곳에 박태성의 묘가 있다. 묘의 좌우에는 완산이씨와 김해김씨의 봉분을 함께 두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1기, 망주석 1쌍, 작은 문인석 1쌍이 있다. 또한 1778년(정조 2)에 건립된 묘갈에는 '유명조선 효자 통덕랑 밀양공 태성 자 경숙 지묘(有明朝鮮孝子通德郞密陽公泰星字景淑之墓)라 새겨져 있다. 봉분 옆에는 호랑이 묘라고 전하는 민무덤이 남아 있고, 그 옆에는 최근에 만든 호랑이 상이 있다.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지정일 1999.2.1)
자원소유자
고양시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1. 북한산국립공원 자원자원조사 보고서(2010. 12) 2. 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2009)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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