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영문주소
19 Jirisan-daero 460beon-gil, Sicheon-myeon, Sancheong-gun, Gyeongsangnam-do

산청 중산리 지리산법계사 연기사적비 석각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기타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지리산
문화자원명
산청 중산리 지리산법계사 연기사적비 석각
보존상태
기타
상세수량
0
자원관리자
기타
자원세부내용
법계사 삼층석탑 앞 바위에 있는 각석이다. 비라 칭하고 있지만 바위에 홈을 파고 그 안에 새긴 각석인 마애비의 형태를 취한다. 가장 오른쪽에 “지리산(智異山) 법계사(法界寺) 연기사적비(緣起事蹟碑)”라 새겨져있어 해당 각석이 연기조사와 법계사에 관한 내력을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처음 이 절을 창건한 사실부터 시작하여 조선 태종 5년(1405)에 벽계선사가 중창한 사실이 차례로 나열되어있다. 이후 법계사는 폐사되었다가 무인년(1938) 봄에 청신녀 신덕순씨가 옛 절터를 손질하고 법당과 큰 방을 갖춘 요사를 지어 이곳을 지켜왔다고 한다. 또한 연기조사는 먼저 화엄사를 창건한 후 이 절을 창건하고 또 대원사를 창건했다. 이 세 사찰에 모두에 사리탑을 세웠으니 이 탑들이 ‘지리산 3탑’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외에도 고운 최치원이 이 절에서 지냈기에 절 앞에 그의 시호를 딴 문창대(文昌臺)가 있다는 사실과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이 절에서 머물며 유람하고 감상한 자취가 있다는 내용을 적어 법계사와 관련된 인물들을 함께 서술해 두었다. 말미에 적힌 “의방산인(義方山人) 월정(月汀) 이병호(李炳昊) 서(書)” “…기묘(己卯) 월(月) 일(日)” “쌍계사사문(雙溪寺沙門) 김운성선문근술(金雲成仙紋謹述)”을 통해 기묘년(1939), 쌍계사 승려 운성 김선문이 글을 짓고, 월정 이병호가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자원소유자
기타
자원수량
0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 문화자원(금석문) 자료집, 2019
최초모니터링년도
기타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아니오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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