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 50-5

금두산성지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2012년 4월 15일 산성에 대한 2차 모니터링시 성의 남서쪽 습지 일대에서 유물 5점(와편 2점, 자기편 3점)을 수거하여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 자문을 의뢰한 결과 와편 2점은 조선 전기에 소성되었고 자기편 3점은 각각 15세기에 18세기로 편년되었다. 이를 통해 금두산성은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2012년 10월 9일 3차 모니터링시에도 동일지점에서 다양한 자기편, 와편, 등이 발견되어 추후 정밀 지표조사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치악산
문화자원명
금두산성지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원주시
자원세부내용
이 산성에 대한 사실은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1942년도에 발간된 >에 처음으로 ‘금후산성(金後山城)’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두산성의 명칭에 대해서는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현재까지 '금두산성'이라는 명칭이 전해오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금두고원' '금두골' 등의 명칭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명칭을 사용하지만 이 문제는 향후 더 연구되어야 할 부문이다. 이 성의 축조시기는 명확지 않다. 다만 축조방식 출토유물 퇴락의 정도 그리고 고려?조선시대의 기록에 전혀 언급이 없는 점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전에 축조된 산성으로 판단된다. 이 성은 향로봉 서남쪽의 해발 1020m되는 고지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해발 약 740m되는 지대까지 축조되었다. 성의 서쪽과 동쪽 일부 구간에 성벽이 완연히 남아 있는데 이는 대체로 암반위에 축조하거나 지반이 튼튼한 곳이기 때문에 붕괴를 면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고 비교적 평탄한 지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성 내부는 지난 1960년대 말 화전정리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 주민들이 화전으로 개간하여 이용하면서 계단식의 전지(田地)로 만들었기 때문에 형태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자원소유자
개인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97 >.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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