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50

의상조사와 선비화 설화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이 선비화는 콩과에 속하는 식물로 속명으로 골담초(骨痰草)로 불리운다. 높이 1m 70cm, 뿌리부분 굵기가 5cm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나무지만 수령 1300년이란 쉽게 믿어지지 않는 전설의 나무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애기를 못 낳는 부인들이 이 선비화의 잎을 따서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원하던 아들을 낳았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들 낳기를 열망하는 극성스러운 부인네들이 이 선비화의 잎을 마구 따가는 바람에 나무가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나무 주위는 무정한 부인내들의 손길을 막는 방법으로 철책을 만들어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이 선비화 나무를 주제로 한 퇴계 이황 선생의 다음과 같은 시(詩)가 있다. 탁옥삼삼의사문(擢玉森森倚寺門) 승언탁석화령근(僧言卓錫化靈根) 장두자유조계수(杖頭自有曺溪水) 불차건곤우로은(不借乾坤雨露恩)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소백산
문화자원명
의상조사와 선비화 설화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이중환[택리지]
자원세부내용
선비화는 부석사 조사당(浮石寺 祖師堂) 추녀 아래 축대 위에서 1300여 년 동안이나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신비한 전설의 나무로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쓰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살아서 오늘날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誌)’에는 이 선비화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라 때의 승려 의상(義湘)이 도를 통하고 장차 서역 천축(天竺)에 들어가려고 할 때, 살던 요문(要門) 앞 처마 안에다가 지팡이를 꽂으면서, 내가 여기를 떠난 후에 이 지팡이가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은 줄 알라하였다고 한다. 의상이 입적한 뒤에 스님들은 그가 살던 곳에 가서 의상의 초상을 만들어 안치(安置)했다. 창밖에 있던 나무는 곧 가지와 잎이 나서 비록 해와 달은 이것을 비추나, 비와 이슬에 젖지 아니하고 항상 집안에 있어도 또한 위를 뚫지 아니하고, 겨우 한길 남짓하게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있다. 광해조에 정조(鄭造)가 경상감사가 되어 이 절에 이르러 이 나무를 보고 ‘선인이 지팡이 삼던 나무로 나도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하고 곧 영을 내려 톱으로 잘라 갔으나 다시 곧 두 줄기가 뻗어나와 전과 같이 자랐다. 1623년(인조 1) 정조(鄭造)는 역적으로 몰려 죽고 나무는 이제까지 사철 푸르러 역시 피고 지는 것이 없으니, 스님들이 부르기를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원소유자
부석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구.영주군지』- 유증선 『부석사』- 김보현 『택리지』 - 이중환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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