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298번길 97-19
영문주소
97-19 Buseoksa-ro 298beon-gil, Buseok-myeon, Yeongju-si, Gyeongsangbuk-do

의상조사와 부석사 창건 설화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의상조사는 홀로 당나라를 향해 수행의 길을 떠났다. 도중에 조사는 고구려 첩자에게 잡혀 고생을 하다가 귀국하여 650년에 다시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당나라에 들어 갔다. 양주楊州에 이르러서 신병을 얻게 되어 양주성의 수위장인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유숙하며 병을 치료하던 중 그의 딸 선묘善妙라는 처녀가 있어 몇 달이 지나자 어느덧 의상조사에게 연정을 갖게 되었다. 이에 조사는 선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법도로 대하여 제자로 삼게 되었다. 어느덧 그녀의 정성으로 몸이 완쾌한 조사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선묘가 조사에게 청하기를 "귀국하실 때 이곳을 지나시면 꼭 소녀의 집에 다시 한번 들려 주시고 가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대사는 이러한 부탁을 쾌히 승락하고 길을 떠났다. 얼마 후 조사는 당나라 서울 장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지엄대사智嚴大師의 제자가 되어 수학하던 중 당唐이 3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범하려는 형세임을 알고, 오직 구국일념救國一念으로 문무왕 11년에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조사는 귀로에 양주 선묘의 집에 이르니 마침 출타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것을 전해 달라고 그녀의 부모에게 부탁한 후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한편, 선묘는 조사의 귀국 선물로 법의法衣를 정성껏 마련하여 손꼽아 기다리던 중, 잠시 집을 떠난 사이 조사가 여정이 급하여 머물지 못하고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들어 두었던 선물을 가지고 조사를 뒤좇아 산동성山東省 해안에 다다르니 조사가 탄 배는 바다 위에 흰 돛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돛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다가 들고 있던 선물을 바닷물에 던지며 축원하기를 "진심으로 조사님을 공양하오니 원컨대 이 옷이 조사님께 이르도록 해 주옵소서"하였다. 때마침 해풍이 크게 일아나면서 던진 선물이 조사가 탄 배 안으로 날아갔다. 이를 보고있던 선묘가 다시 축원하기를 "이 몸이 용이 되어 조사를 받들어 무사히 귀국하도록 해 주옵소서"하며 바닷물에 몸을 던지니, 기이하게도 선묘가 바랐던 대로 용이 되어 조사의 멀고 험한 귀국의 길을 줄곧 호위하였는지라, 조사는 무사히 귀국하여 나라에 당의 침략 흉계를 고하고 난을 면하게 하였다. 그 후 조사는 왕으로부터 사찰 건립의 명을 받아 영주시 봉황산에 이르러 지세를 살펴본 즉 화엄종지華嚴宗旨를 크게 선양할 수 있는 명산이나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교異敎의 무리 5백여명이 점령하고 있으므로 수차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들이 막무가내로 듣지 아니하여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공중에서 바라보니 순리로는 조사의 뜻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법력을 써 지금의 무량수전 서편에 있는 큰 바위를 공중으로 올렸다 내렸다 3차례나 하였더니, 무리들이 겁을 집어 먹고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사찰을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며 이교도들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공중에서 세번이나 떴다는 큰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불러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거대한 모습으로 묵중히 앉아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소백산
문화자원명
의상조사와 부석사 창건 설화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부석사
자원세부내용
부석사는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기슭에 있는데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총본산이었다. 목조의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비롯해서 석등 석탑 본존불상과 조사당의 벽화 및 석조여래상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사찰이다. 부석사란 명칭은 경내에 있는 ‘부석’이란 바위와 연관된다.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이 바위는 아래쪽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하며, 부석사나 부석면의 명칭 또한 이 '뜬돌'에서 유래한다. 실제 뜬돌 아래로 실을 넣어서 당겨보면 걸리는 곳 없이 실시 빠져 나온다고 전한다. 한편 부석사 창건과 관련하여 의상조사와 선묘와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의상조사는 당나라에 구법수행을 떠나는데, 중국에 도착에 병을 얻어 당나라 양주성의 수위장인 유지인의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중 수위장의 딸인 선묘는 의상조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으나 물리치고 다만 제자로 삼게 되었다. 이후 당나라에서 수행하던 의상조사는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려는 정보를 알게 되어, 급히 귀국길에 오르게 되고, 선약대로 선묘의 집에 들렀다. 그러나 외출중인 선묘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뒤늦게 사실을 안 선묘는 마련한 법의(法衣)를 갖고 조사를 뒤좇아 산동성 해안에 다다랐으나 끝내 조사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들고 있던 법의를 바닷물에 던지며 축원하기를 "진심으로 조사님을 공양하오니 원컨대 이 옷이 조사님께 이르도록 해 주옵소서"하였다. 때마침 해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던진 선물이 조사가 탄 배 안으로 날아갔다. 이를 보고 있던 선묘가 다시 축원하기를 "이 몸이 용이 되어 조사를 받들어 무사히 귀국하도록 해 주옵소서"하며 바닷물에 몸을 던지니, 기이하게도 선묘가 바랐던 대로 용이 되어 조사의 멀고 험한 귀국의 길을 줄곧 호위하였는지라, 조사는 무사히 귀국하여 나라에 당의 침략 흉계를 고하고 난을 면하게 하였다. 귀국한 조사는 왕으로부터 사찰 건립의 명을 받았으나 선점한 무리가 터를 순순히 내어놓지 않자,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법력을 써 지금의 무량수전 서편에 있는 큰 바위를 공중으로 올렸다 내렸다 3차례나 하였더니, 무리들이 겁을 집어 먹고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사찰을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며 이교도들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공중에서 세 번이나 떴다는 큰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불렀으며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거대한 모습으로 있다.
자원소유자
부석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삼국유사 구영주군지 부석사지 영남의 전설-유증선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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