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656
영문주소
64-5 Wollam 1-gil, Seongjeon-myeon, Gangjin-gun, Jeollanam-do

월남사지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월남사터 삼층석탑과 석비 영암에서 월출산 동쪽의 풀티재를 넘으면 곧 강진군 성전면이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월출산 줄기를 향해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 월남리에는 월남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절은 없어지고 석탑과 석비가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팻말이 선 곳에서 13번 국도로부터 갈라져 들어가는 월남리 마을길은 넓은 차밭을 지나 산쪽으로 이어진다. 차밭이 생기기전에 이곳은 대밭이 무성하게 우거진 마을이었다. 월출산의 화려한 능선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이는 탑전마을에 이르면 훤칠하게 잘생긴 탑 하나가 돌담과 대나무,동백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높이는 7.4m이고 기단의 한 변 길이가 2m가량 된다. 단층 기단과 1층 및 2층 몸돌,각 층의 지붕돌 등탑 전체가 여러 개의 작은 석재를 맞춰서 이루어졌는데, 기단의 폭이 1층 지붕돌 폭보다 좁고 1층 몸돌이 훌쩍 높기 때문에 늘씬한 느낌을 준다. 2층과 3층의 몸돌은 높이는 같고 폭만 좁아졌다. 3층의 몸돌만이 한 개의 돌로 되어 있고, 1층과 2층은 네 모서리의 우주와 면석이 각각 다른 돌로 되어 있다. 꼭대기에 몸돌과 같은 네모진 석재가 얹히고 그 위에 노반.복발.앙화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있다. 지붕돌은 시루떡처럼 편편하고 넓적하며 네 모서리가 약간씩 들렸다. 월남사터 삼층석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붕돌 아래위의 모습이다. 1층과 2층 지붕돌 아래의 3단 받침은 가운데단만 각이 졌고 아래위의 두단은 둥그스름해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지붕돌 받침을 연상시킨다. 3층 지붕돌 받침은 2단이다. 또 지붕돌의 윗면은 보통 볼 수 있는 경사면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탑을 전탑의 양식을 모방한 모전석탑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 개의 작은 석재들을 쌓아서 만들기는 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전돌 모양은 아니다.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좁은 단층 기단과 높은 1층 몸돌,그리고 지붕 돌 받침의 형식에서 백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양식을 이었으며 보물 제 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노인의 말에 따르면 1900년대 초까지 무위사 스님들이 1년에 한 번씩 이 탑을 비단으로 감싸고서 주위를 돌며 불공을 드렸고, 이밖에도 다른 탑이 한기 더 있었다고 한다. 없어진 탑의 부재들은 마을 안 이곳 저곳의 집에 흩어져 있다. 탑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아주 용맹하게 생긴 커다란 거북위에 얹힌 비석이 있다.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을 기리는 비이다. 진각국사는 고려 고종 때 살았으며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조계산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에 있던 수행결사) 의 제2세 사주가 된 사람이다. 비석의위쪽은 깨어져 없어졌는데 대석과 거북의 기세, 남아있는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한 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깨어져 나간 비석 조각이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석과 거북은 한 돌로 만든 것이며 남아있는 비의 높이는 2.12m, 전체 높이는 3.58m이다.편마암 비석이 풍상에 닳아서 맨눈으로 글자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글자가 앞뒤로 빽빽히 적혀 있고 뒷면 아래쪽에 희미한 문양대도 보인다. 비의 앞면에 적힌것은 진각국사의 행적이다. 고려의 대문장가였던 이규보가 비문을 지었는데, 남아있는 비면이 마멸되어 다 읽어낼 수 없지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동문선]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비의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와 진각국사의 제자 118명의 이름 등이 기록된 음기(陰記)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이규보의 비문과 별도로 최자가 지은 것이다. 음기에 따르면 이 비는 고종 37년(1250)에 최씨 무신정권의 제2대 집정인 최우(崔瑀, 崔怡와 같은 사람) 와 그의 아들 최항(崔伉)의 각별한 관심에 따라 이곳 월남사에 세워졌다. 최이는 진각국사를 멉시 존경하여 자기의 두 아들을 그 제자로 보냈다. 최항은 그 두아들 가운데 하나로 나중에 환속하여 최씨 정권의 3대 집정이 되었다. 만들어졌던 시대를 반영하듯 무인풍의 호걸스러움을 보이는 거북과 비는 지금 보물 제313호로 지정되어 보호각 안에 들어 있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잡초와 칡넝쿨에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월남사는 진각국사가 창건했다고만 전해질 뿐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절이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데, 대략 조선 후기에 폐사 되었을 것으로추정된다. 탑 주변의 길이나 밭 등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외곽 담장의 흔적, 마을이곳 저곳의 집에 초석이나 담장 돌로 쓰이고 있는 옛 절의 기단석 등을 볼 때 인근에서 가장 큰 절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건물 벽에 쓰였던 듯한 청자 타일 조각도 발견되었다. 참고 문헌 : 저자(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연도(1997.04.29)/책명(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편)/출판사(돌베개)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월출산
문화자원명
월남사지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강진군
자원세부내용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지만, 경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나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편으로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발견된 지붕돌의 세부기법이 월남사터에 있는 백제계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다른 신라계 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한 절터에서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양식의 석탑이 함께 자리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츨토되고 있다.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기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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