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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93-9

주류시(周留市)의 폐허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옛날 백제 때의 제10대 분서왕(汾西王)이 변산(邊山)의 개암동(開岩洞)에 있는 우진암(禹陣岩)에 웅장한 주류성이라는 성을 쌓고 이 곳에 이궁(離宮;왕의 별궁으로 가끔 행차하여 머무는 관전)을 짓고 가끔 행차하여 아름다운 변산의 승경을 즐기며 며칠씩 쉬었다는 말이 전하고 있다. 우금암에서 본 감교리 그 무렵 이 곳 개암동 앞 지금의 감교리(甘橋里) 일대는 매우 번창하여 시장이 섰는데 이 시장을 주류시라 하였다 하며 주류시에서 유정치(柳亭峙)를 넘어 보안현(保安縣)의 남포리(南浦里) 근처에는 또 희안시(喜安市)가 있어 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후안은 보안의 옛 이름이다. 이와 같이 주류시와 희안시가 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번창하게 된 것은 변산 안에 많은 사찰이 들어서고 불교가 매우 번성하여 8백여 암자가 있었다고 전하며 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변산의 입구인 이 두 곳에서 자연히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시가지가 뜻밖의 재난으로 폐허가 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중엽 무렵의 어느 해부터 갑자기 이름 모를 병마가 이 두 시가지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하여 날마다 사람이 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전전긍긍 하였다. 이는, 「명산의 신목을 함부로 베어 집을 지어서 그렇다」느니 또는 「영산인 변산 안에 더러운 속인이 많이 들어가 산신이 노해서 그렇다」느니 하며 불공을 드리는 사람,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 우왕좌왕 하는데도 아무런 효험은 없었으며 사람은 날로 더 죽어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날 백발의 노인 한 사나이가 나타나 주류시와 희안시의 중간인 유정치 고개마루에 나타나 양쪽 시가를 바라보며 「허! 이거 큰 일이 났고나!」 하고 크게 탄식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노인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변산은 원래 영산인데 더러운 속인이 너무 많이 더렵혀 신불(神佛)이 크게 노한 것이요. 사람을 모두 쓸어내려 하고 있소」 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대책을 물으니 「다른 도리가 없소 모두 이곳을 비우는 도리밖에!」 하고는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이 소문이 퍼지자 주류시와 희안시에는 집을 비우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는 사람으로 아우성이었으며, 며칠 후에는 두 시가가 개미새끼 한 마리 살지 않는 폐허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하며 감교리 일대에는 토질(土疾)이라고 하는 풍토병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변산반도
문화자원명
주류시(周留市)의 폐허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백제시대부터 개암동 앞 지금의 감교리에는 번창한 시장이 섰다. 변산에 불교가 번성하고 8백 여 개의 암자가 들어서자 입구인 이곳 일대에 자연스레 매우 번창한 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재(고개) 하나를 두고 개암동 앞 지금의 감교리(甘橋里) 일대는 주류시라는 시장이 섰고, 주류시에서 유정치(柳亭峙)를 넘어 보안현(保安縣)의 남포리(南浦里) 근처에는 희안시(喜安市)라는 시장이 서게 된다. 이 두개의 시장은 스님들을 대상으로 열렸는데 고려 중엽, 뜻밖의 재난으로 폐허가 된 것이다. 갑자기 이름 모를 병마가 이 두 시장을 중심으로 번지면서 사람이 죽어나가게 된다. 이를 두고 “명산의 신목을 함부로 베어 집을 지어서 그렇다.” 또는 “영산인 변산 안에 더러운 속인이 많이 들어와서 산신이 노해서 그렇다.” 는 말이 무성했다. 이 전염병을 없애고자 불공을 드리거나,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으나 아무런 효과는 없었고, 사람은 날로 더 죽게 되어서 인적이 드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발의 노인이 두 개의 시장인 주류시와 희안시의 가운데인 유정치에 나타나 양쪽 시가를 바라보며 “허! 이거 큰 일이 났구나!” 하고 크게 탄식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변산은 원래 영산인데 더러운 속인이 너무 많이 더럽혀 신불(神佛)이 크게 노한 것이요. 사람을 모두 쓸어내려 하고 있소.”」 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대책을 물으니 “다른 도리가 없소, 모두 이곳을 비우는 도리밖에!”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 소문이 퍼지자 주류시와 희안시에는 집을 비우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는 사람으로 아우성이었으며, 며칠 후에는 두 시가에 인적이 끊긴 폐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이곳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하며, 감교리 일대에는 토질(土疾)이라는 풍토병이 오랫동안 유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 참고문헌 - 전라북도, 1990, 전설지, 전라북도 ○ 참고사이트 - 무형문화유산온라인지식사전(http://www.ichpedia.org)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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