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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99

우금산성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문화재지정 : 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 1974년 9월 24일 성서면 개암사 뒷산을 감고 있는 석성을 우금산성(일명 주류성)이라 한다. 이 성은 양능선을 다라 동서로 연장되었으며 동측은 315고지를 동남우로 하여 능선다라 동편을 감고 동북우 300고지에서 서쪽으로 꺽여 북서우의 213고지의 바깥쪽을 위요(圍繞)하면서 남주(南走)하다가 서남우의 울금바위 북단에 연결되는데 성의 총 길이가 3960m에 이른다. 이 산성은 백제가 망한 후 백제 부흥을 위하여 복신장군이 일본에 망명해 있는 왕자 부여풍을 받들고 유민을 규합하여 최후항쟁을 벌였던 주류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변산반도국립공원 부안 p.64) 주류산성(우금산성)은 상서면 감교리에 있으며 전라북도 기념물 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류산성은 주류성 위금암산성 우진고성 우금산성 울금바우산성 등으로도 불린다. 산성은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한 해발 331m의 높이에서 서변과 동변의 산줄기로 연결된느 포곡식 산성이다. 남변은 울금바위에서 수구를 행해 내려오는 능선을 따라 성벽이 축조되었으며 서변은 능선의 외측사면에 석축하였으나 거의 무너진 상태이다. 동변은 축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성곽의 북단에 북장대가 있고 남변 수구 서편에 남장대가 있다. 성곽은 울금바위에서 남장대까지 675m 수구까지 113m 수구에서 동남각까지 563m 울금바위 서변의 북서각까지 800m 여기에서 북단까지 830m로 성곽의 둘레는 3960m가 된다. 성벽의 높이는 3m 내외 ?면의 너비는 2m정도이다. 성내의 건물지에서는 묘암사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주류산성은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장하자 백제 부흥군이 왕자 부여풍을 받들어 최후 항전을 벌였던 현장으로 전하고 있다.(부안문화유산자료집 p.330) 개암사 뒤쪽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우금산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총 길이는 3960m에 이른다. 축성 연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고려 신종 때 이규보의 시에 처음 나타난다. 이곳이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거점이라는 주류성이라는 주장이 있다. 주류성은 충청남도 한산이라는 설과 예산 쪽의 내포군이나 연기군이라는 설 이곳 부안의 우금산성이 다투는 가운데 백강은 동진강ㅇ르 말하며 주류성은 바로 우금산성이라는 설이 고고학적 발굴에 힘입어 세를 얻고 있다. 백제가 망한 뒤에 나당 연합군의 점령지역 밖에서는 백제 부흥군들의 항쟁이 시작?더. 그 결과 부흥항쟁에 200여성이 호흥하여 당나라 군대에 저항하였다. 나당 연합군은 백제의 사비성을 중심으로 금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었고 이를 제외한 전국을 백제 부흥군이 장학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부흥군의 중심인물은 무왕의 종자로 알려진 복신장군과 승려인 도침이었다. 이들은 주류성을 중심으로 항쟁을 주도했으며 일본에 가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왕통을 잇게 하여 부흥군의 사기를 높였다. 그러나 부흥군을 주도하던 복신과 도침 사이에 불화가 생겨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군사를 통합하게 되었고 풍장왕을 해치려다가 오히려 살해되었다. 부흥군의 중심인물인 복신장군의 죽음으로 부흥군 진영이 흔들리게 되자 풍장왕은 고구려와 왜에 원벼을 청하여 당군에 다항하려했다. 나당연합군은 일본에서 온 수군 400여 척을 663년 9월 7일에 백촌강 해전에서 격파하고 백제 부흥군의 본거지인 주류성을 함락시켰다. 주류성을 중심으로 4국의 국제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패배한 풍장왕은 고구려로 망명하였고 백제 부흥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당시 일본에서 백제를 도우러 왔단 백제 유민들은 "주류성도 무너졌으니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도다. 백제의 이름도 오늘로써 다하였으니 어찌 고향을 밟으리오" 그들은 다시 망향의 슬픔을 간직한 채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울금바위에는 세 개의 굴이 있는데 가장 큰 굴은 복신장군의 지휘소였다 하여 부안 사람들은 지금도 복신굴이라고 부르고 복신굴 가기 전에 오른 쪽으로 돌아가면 원효대사의 수도처였다는 원효방이 보인다.(부안문화유산자료집 p.426) ○보수정비 사 업 명 : 우금산성 주변정비공사 사업면적 : 16067㎡ 사업내용 : 잡목 및 뿌리제거(변산반도사무소-3059호(2010.6.9))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변산반도
문화자원명
우금산성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부안군
자원세부내용
우금산성(禹金山城)은 개암사(開巖寺)의 뒷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남쪽으로 통한 계곡 수구에 남문 을 설치하고 양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결되었으며 서남쪽으로는 울금바위 북단에 연결된다. 울금바위에 서 다시 동쪽으로 꺾여 수구에 이르는데 수구 옆 험준한 절벽 위로 장대(장수가 명령하던 돌로 높이 쌓 아 만든 곳)가 있다. 면적은 123,444㎡로 남변 길이는 수구에서 동측선이 563m, 울금바위까지의 서측선은 675m로 총 1,238m에 이르고 동변은 1,010m 북변은 830m 서변은 838m로 전체의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사다리형이다. 「개암사 사적기」에는 "…변한의 왕이 마한과 진한의 난을 피하여 여기에 도성을 쌓았다. 이 때에 우· 진의 두 장군이 그 일을 맡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성으로 그 바위 이름을 삼았는데 그 도성을 지키기 3 0여 년이었다고 한다. 바위의 좌우에 큰 절이 있으니 묘암과 개암이라 하였으니 곧 우진이 지은 것이 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 산성은 백제가 망한 후 의자왕 20년(660) 백제 부흥을 위하여 복신 (福信)이 일본에 망명해 있는 왕자 「부여 풍」을 받들고 유민을 규합하여 항전하다가 나당 연합군의 김유신(金庾信)과 소정방(蘇定方)에게 패한 「주류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총길이 3,960m 면적 123,444㎡)
자원소유자
부안군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 참고문헌 -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 국립공원관리공단 - 국립공원연구원, 2009, 변산반도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국립공원관리공단 - 부안군, 2004, 부안군문화유산 자료집, 부안군 - 부안군, 2001, 변산반도국립공원 부안 ○ 참고사이트 - 부안문화원(http://buan.kccf.or.kr/) - 부안군청(http://www.buan.go.kr/)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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