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196

농부의 탐욕과 독성님의 대노(大怒)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해인사 희랑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의 일이다. 함양에 살고 있는 한 농부가 가난하였지만 마음씨가 착하고 심신이 지극하였다. 한번은 희랑대에서 독성기도를 정성껏 드리고 꿈속에 독성님으로부터 열쇠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못되어 함양의 갑부로 성장하였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부자가 된 농부는 착한 본래의 마음을 잃고 탐욕이 늘어 인정과 도덕심도 없이 돈 모으는데만 혈안이 되어 많은 인심을 잃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이 농부는 반성은 커녕 오히려 돈을 더 모을 욕심으로 희랑대에서 또 독성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7일 기도가 끝날 무렵 백발노인인 독성님이 크게 꾸짖으며 "너 이놈, 돈만 알고 불심도 인정도 도덕도 몰라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전에 준 열쇠를 당장 내놓으라" 하시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농부는 열쇠를 빼앗긴 것이 허전하고 섭섭하였지만 설마 설마 하면서 귀가하였는데, 이 일이 있은 이후로 살림이 줄기 시작하여 겨우 연명할 20석의 토지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지관, 1992, >, 가산문고)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가야산
문화자원명
농부의 탐욕과 독성님의 대노(大怒)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
자원세부내용
희랑대는 그 암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희랑조사가 머물던 곳이다. 희랑조사(889~956)는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해인사의 고승이다. 화엄학(華嚴學)의 대가였던 스님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해인사를 중창하기도 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조사도(祖師圖·1892년 제작)'를 보면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 이정 스님과 함께 그려질 만큼 희랑조사는 불법을 크게 일으킨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희랑대 뒤 큰 바위 곁에는 희랑조사가 심었다는 노송 한 그루가 있었으나 최근에 말라 죽었다. 희랑대 뒤 삼성전(三聖殿)에 모신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유명하다.
자원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지관, 1992, >, 가산문고. 매일신문 상생의 땅 가야산 특별취재팀, 2008, >, 깊은솔.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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