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 71

경주 남산신성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성의 규모는 약 3750m가 되므로 《삼국유사》나 《동국여지승람》의 기록보다 《삼국사기》 본기(本紀)에 기록된 2854보(步)가 옳은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돌도 유실되었으나 몇몇 곳에는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 있어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세로 20cm 가로 50cm 정도의 가공석(加工石)으로 축조하고 높이가 약 2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평왕 때는 고구려와 백제의 급박한 침입에 대처하고 문무왕 때는 당(唐)나라와의 싸움에서 도성을 수비하기 위한 요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경주 남산신성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경주시
자원세부내용
경주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시대의 성으로서 '남산신성'이라고도 한다.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이다. 591년(신라 진평왕13)에 쌓았으며 663년(문무왕 3)에는 성내에 큰창고를 지어 무기와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679년에는 성을 크게 고쳐 증축했다고 한다. 대부분 원형을 잃고 붕괴되고 무너졌으나 그 궤적은 잘 남아 있다. 지금 성벽이 남아있는 부분은 증축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적당히 다듬은 돌로 쌓은 성벽은 잘 남아 있는 곳은 높이가 약 2m가 된다. 남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돌로 쌓았으며 성 안에는 3개의 커다란 대형 창고의 흔적이 보인다. 아직도 큰 창고 자리에는 불에 탄 쌀이 나온다. 성 부근에는 발견된 남산산성축성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맡아 쌓았으며 만일 3년 이내에 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관계한 사람들의 벼슬/성명/출신지가 새겨져 있다.
자원소유자
국유 사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윤경렬 1993.「겨례의 땅 부처님의 땅」불지사.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