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영문주소
122 Haeinsa-gil, Gaya-myeon, Hapcheon-gun, Gyeongsangnam-do

해인성지를 오염시킨 왜정주구Ⅰ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기타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가야산
문화자원명
해인성지를 오염시킨 왜정주구Ⅰ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1943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지 33년째에 이르자, 그 악독함이 더욱 심해졌으며 조선의 모든 물자를 군수용으로 반출했다. 해인사도 예외일 수 없었고 가야산의 울창한 소나무도 무참하게 벌목을 당했다. 또한 가야산 내 진귀한 보물 1,900 여 점도 3대의 트럭에 가득 실어 공출하였으니 민족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중 해인사에 저지른 만행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합천경찰서장을 앞세워 강원을 짓밟은 참혹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에도 해인사에는 불교전문강원이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승들이 불법을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강백을 맡은 고경스님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실정을 잘 알고 있어서 원생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는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강원의 이름을 법보학원으로 고치고, 당시 중ㆍ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유지하면서 불전을 중심으로 역사ㆍ수학ㆍ지리ㆍ영어 등의 일반과목까지 강의하였다. 고경스님의 민족사에 입각한 애국사상이 일제의 황국신민화교육에 어긋남은 불문가지의 일로서 일제주구들은 이를 빌미로 해인사를 찾아왔다. 원생들의 책상과 책가방을 뒤져보니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와 순국선열들의 이야기가 적힌 사적과 위인들의 업적이 기록된 글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에 일제는 법보학원을 폐쇄하고 고경스님과 학원장인 환경스님을 구속하고 온갖 고문과 악형을 계속하였다. “민족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교육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말 뿐 일체의 말을 하지 않은 고경스님은 모진 고문으로 얼마 뒤 입적하시게 되었다. 환경스님과 다른 스님들은 이후 더 고생하시다가 8.15광복으로 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이지관, 1992, 가야산 해인사지, 가산문고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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