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산 1
영문주소
34-62 Singeum-gil, Bongnae-myeon, Goheung-gun, Jeollanam-do

신금마을 마신당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신금마을은 전남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에 있는 7개마을(신금, 진기, 동광, 비치, 축정, 원도, 엄남)중에 하나로 신금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362호로 지정된 나로도상록수림과 나로도(신금)해수욕장이 있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고흥분소와 전라남도교육청나로도학생수련장이 있다. 신금마을에 사람들이 거주하게 된 것은 대하황제승(大河皇帝升)의 후손인 연안(延安) 명도리(明道理)씨가 조선 인조 때인 1625년 해주 오씨의 딸과 혼인하여 마을로 들어왔으며 1716년경 남양 홍구석(洪九錫)씨와 김해 김봉순씨, 1746년에 전주 이계영씨 등이 입주하면서부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을 “신금”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마을 뒤쪽에 당묘산(當墓山)의 지형이 거북이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원래는 신구미(新龜尾)라고 하였는데 1956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신금(新錦)을 바구어 부르게 되었다. 나로도 상록수림 중앙에는 마신제(馬神祭)를 모시는 신당(神堂)이 있는데 신금마을 사람들은 이 신당을 매우 신성시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일반인들의 신당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신당이 있는 곳은 현재 휀스가 돌려 처져 있어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으며 휀스 밖 해변 쪽으로는 시멘트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나로도에는 많은 말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옛날에는 말이 군사적 또는 교통의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말 사육을 전담하는 관리를 파견하여 말을 관리하였으며 섬에서 사육된 말은 육지로 공급되었다. 옛날 덕암산 중턱에 도양목관에 속하는 우마장(牛馬場)이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신구미(新龜尾)를 향하여 진군을 하던 한 장수가 배에서 마을을 향하여 창을 던졌는데 그 창의 위력이 얼마나 세던지 현재의 창포마을[우주센타(하반마을)로 가기 전에 있는 해변가 마을]까지 날라 갔으며 창이 꽃인 자리는 현재의 창끝마을이 되었고, 창이 날라간 마을은 “창이 날라간 포구”라는 뜻으로 창포(滄浦)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배에서 장수가 창을 던진 것을 본 아낙네가 큰 소리로 “창이야”하고 외쳤는데 이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때마침 산 능선에서 낮잠을 즐기던 호랑이가 놀라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고 하며 이 때 호랑이가 떨어져 죽은 바위를 호랭이바위, 호랑이가 놀던 산을 호랭이산 이라고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 배에서 창을 던진 장수는 신구미 포구(浦口)에 다다라 평소 아끼고 사랑하던 애마(愛馬)를 타고 현재 상록수림 있는 마신당이 있는 곳으로 뛰어 올랐는데 이 때 너무 높이 뛰어 올라 말이 마신당이 있는 곳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장수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애마가 죽자 크게 상심하며 그 곳에 말을 묻어주어 주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신금마을에서는 뚜렷한 이유없이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 나갔으며 마을사람들은 이것은 말의 혼이 사람들을 불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말이 죽은 자리에 말의 혼을 위로하는 마신당(馬神堂)을 세우고 마신제를 올려왔는데 이 때부터 사람이 죽는 현상이 멈추었다고 한다. 이후 마신당은 마을을 지켜준다는 삼신할미 신당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마신을 모시는 제사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과 유월 보름, 일년에 두 번 모셨으며 이 때 제를 모시는 제주는 몇 달 전부터 굿은 일을 하지 않고 상가 집에도 가지 아니하며 남과의 시비를 피하고 제를 모시기 전가지 부부관계를 금하는 것은 물론, 제일(祭日)에는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럽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마신제(馬神祭)가 끝나면 마을 농악단이 마을을 돌며 신금마을의 안녕을 축원하고 제사음식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마을의 단결과 화합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신금마을의 이런 전통은 수 백 년간 이어져왔으나 현대에 들어와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가고 제를 지내던 마을원로들 마저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가 몇 해 전부터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일년에 한번씩만 제를 모셔오고 있다. 신금마을 상록수림이 현재처럼 우거지게 된 것은 신금마을 사람들의 숲 지키기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해방이후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연료를 화목에 의존하였으며 신금마을 사람들 역시 산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연료로 사용하였으나 현재의 상록수림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신당이 있는 상록수림에 손을 댈 경우 부정을 타서 혹시나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으며 이 덕분에 상록수림은 지금처럼 무성하게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자체경비로 마신제를 진행하여 왔으나 2010년부터 문화재청에서 매년 150만원을 지원받아 당산제를 운영하고 있다. - 자료출처 : 봉래면 신금리이장 김문갑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신금마을 마신당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신금리이장
자원세부내용
고흥읍 외나로도의 서북쪽 바닷가에 있는데 제당은 고흥 나로도 상록수림 안에 있고 돌담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규모는 약 27㎡이다. 마신당에서는 매년 음력 1월1일 0시를 기해 마을 주변을 돌면서 굿을 치고 제당으로 올라가 마신제를 지낸다. 마신제를 지낸 후 오전 6시에 마을을 돌면서 굿을 친다. 제사는 유고가 없는 사람이 제주가 되어 3달 전부터 근신을 한다. 마신당에는 암수의 말 한 쌍을 모시고 있다.
자원소유자
신금리이장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참고문헌 : 2009 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 국립공원 직원이 쓰는 국립공원 이야기 - 카페 네이버 백과사전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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