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산 37-1

류정승 피난굴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류청신의 호는 신암이며, 본관은 고흥이다.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류욱의 손자이고, 문하시랑추밀원사를 지낸 류승무의 아들이다.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좌참찬이 되었으며, 충렬왕 때 공을 세워 3품으로 승진하였고 충렬왕은 당시 장흥부 고이부곡을 고흥현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이후 충렬왕 때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원나라 황제에게 충렬왕을 본국으로 환국시켜줄 것을 청하고, 대신 자신을 인질로 삼을 것을 3년간 요청하니 원나라 황제는 그 충성을 가상히 생각하여 ‘청신’이란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환국 후 충선왕이 정승에 제수하고 또 고흥부원군에 봉하여 옥대를 주어 선충동덕좌리익조공신의 호를 더하였다. 충렬, 충선, 충숙 삼조에 걸쳐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원나라에는 29번 왕래하였다고 한다. 신유년 충숙왕 때에 왕과 함께 원나라에 들어갔는데 원나라에서는 충숙왕을 억류하고 풀어주지 않았다가 이후 5년만에 류청신을 인질로 삼고 충숙왕을 풀어주었다. 이후 류청신은 끝내 환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원나라 황제는 예를 갖춰 그를 장사하게 하고 한림학사 조맹부는 화상을 만들어 찬하고 그의 신주를 안동국에 봉하였다. 이후 고려 충숙왕은 그에게 영밀이란 시호를 주었고, 조선 태조는 등극한 2년에 특별히 영의정을 증직하고 중신을 보내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류청신의 사우와 정려는 천안시 풍세면에 있으며, 대대로 부조묘에서 제축하고 사림공의로 고흥읍 호동 운곡사에 항배하였다. 또한 류청신은 우리나라에 호두나무를 처음으로 들여온 인물로도 알려져 잇다. 고흥읍의 봉황산 중턱에 류청신유적비가 남아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류정승 피난굴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전라남도 고흥군
자원세부내용
고려시대 고위관리이자 외교관으로 활약하던 류청신(柳淸臣)이 10세 때 왜구의 침입을 피해 부모를 따라 피신한 석굴로 알려져 있다. 피란 중에 적에게 발각되어 적의 칼날이 어머니의 가슴을 겨누는 순간 재빨리 적을 가로막고 대신 죽여 달라며 애원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효성에 감복한 왜구들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으며, 나중에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그의 효성을 기려 효아정려(孝兒旌閭)를 내렸다. 이것을 계기로 이곳을 류정승 피난굴이라 전해오고 있으며, 굴 전면에는 류정승피난지(柳政丞避難地)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참고로 정려(旌閭)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한다. 류청신은 충렬, 충선, 충숙왕 대의 외교관으로서 원나라에는 29번이나 왕래하였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나라에선 영밀이란 시호를 내리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류청신의 사우와 정려는 천안시 풍세면에 있으며, 고흥읍 봉황산 중턱에는 류청신의 유적비가 남아있다. 한편 그는 우리나라에 호두나무를 처음 들여온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원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능가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고흥군, 2010, 팔영산에 얽힌 이야기, 고흥군청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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