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 56-2
영문주소
306 Dogapsa-ro, Gunseo-myeon, Yeongam-gun, Jeollanam-do

도갑사 수미왕사비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헤아려 생각하건데 바다가 넓고 깊어 크다고 한 까닭은 맑은 물만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흐린 물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깊은 이치를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까닭은 꼭 집어내 바로볼 수 없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표현키 어려운 이치를 확실하게 얻으면 비로소 깨달음의 문에 들어서 나고 죽는 고통 바다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여러 모습의 삶을 사는 이들을 안락한 곳으로 인도하게 되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존중하게 된다. 근세에 묘각왕사(妙覺王師)가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입적하신 대사의 이름은 수미이시고 세속의 성은 최씨이시며 낭주에서 출생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신령한 사람으로부터 구슬을 전해 받은 꿈을 꾸시고 잉태하였는데 태어나실 때 예사롭지 않은 상서로운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한다. 대사께서는 어릴때부터 남달리 영특하시어 옳지 않은 일을 멀리 하시려는 뛰어난 뜻을 항상 품고 계시다가 13살 되던 해에 낭주 서쪽에 있는 월출산 도갑사에 들어가시어 스님이 되셨다.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그 후 여러곳의 강원으로 다니며너 경율론의 삼장을 배우고 닦으셨다. 이어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스님을 만났는데 뜻밖에 나이도 같고 이름 또한 같았다. 대사께서는 그와 함께 부처님의 성전을 간절히 갈고 닦고 연마하여 깨달음의 이치를 익히셨는데 날이 더해가자 자비스러운 얼굴에 깊은 깨달음의 눈빛이 뚜렷히 빛나 엄격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함께 수행하던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본래 깨달음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등지고 있는 것은 마치 승요스님이 그림을 잘 그리므로 뛰어난 묘화라고는 하지만 그 그림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고 배우고 익혀오시던 학문을 접고 짚신을 신고 우산을 지팡이 삼아 제방 선원으로 들어가셔서 구곡 각운 스님을 친히 만나 뵈었으나 서로 부합하지 못하셨다. 그 후 벽계정심 스님을 만나 깨달음의 도움을 받았으나 태종이 불법을 매우 박해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불문의 앞날이 꽉 막히고 그 운명이 암담한 시기를 맞이하여 선(禪) 수행이 흔들리고 수행처의 황폐한 모습이 새벽 별빛과 같았다. 그런 시기에 대사께서는 판선종사에 피선되시어 종횡으로 터져 흐르는 불법사태의 거센 물결을 가로 막고 무너진 둑을 다시 쌓아 사태의 흐름을 되돌려 종문의 큰 힘이 되셨다. 이와 때를 같이해 본사인 도갑사로 돌아오셨으니 이는 본래 성품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보여주심이 아니겠는가. 대사께서는 도선국사께서 개산한 비보사찰의 도량이 황폐되다시피 퇴락해 서늘한 안개와 잡초 속에 방치되듯 버려진 모습을 가슴 아프게 개탄하시고 대중들에게 "우리가 가람을 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참혹한 광경을 어찌 보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말씀하시고 손수 가람 중창에 나섰던 바 성상께서 스님의 문도인 홍월스님으로 하여금 복구공사를 주관토록 명령을 내리시었다. 잉 힘을 다해 온갖 정성을 다하니 훌륭하고 아름다운 다홍빛 궁궐이 궁중에서 떨어진 것과 같았다....(후략)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월출산
문화자원명
도갑사 수미왕사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도갑사
자원세부내용
도갑사 경내에 서 있는 비석으로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수미는 조선시대 승려로 13세에 도갑사로 출가하였다. 법주사 등을 다니며 경전 공부를 하다가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한 절을 중창하였고 불경 언해 기구인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 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내리고 왕사(王師)로 임명하였다. 이 비는 귀부와 비신과 이수가 모두 잘 남아 있는데 총 높이가 3.35m이고 비석의 높이만 2m이다. 돌거북의 머리는 눈살을 심하게 찌뿌린 용의 얼굴처럼 보이고 목은 짧으며 등껍질이 두껍게 표현되었다. 이수에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 오른 구름무늬와 앞면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용을 두 마리 새겼으며 양쪽 귀퉁이 각각에도 용의 얼굴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1581년(선조 14)에 비가 넘어져 새로 세운 것으로 1629년(인조 7)에 만들기 시작하여 1633년(인조 11)에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한 작품이다. 다만 그 양식과 기법이 고려 전기에 유행하던 것과 비슷한 점이 특색이다.
자원소유자
도갑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1. 한국문화유산답사회 1995 돌베개 2. 대한불교조계종 월출산 도갑사 2003 3.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4. 문화재청 홈페이지 www.cha.go.kr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