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산 37

국망봉과 배점의 지명 유래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소백산골에 500년전의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에서 양반도 유생도 아닌 이 사람이 퇴계와 같은 도덕군자의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 분의 행실이 얼마나 돈독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후에 그 분의 덕을 기리기 위해 그 분이 살던 마을의 이름을 배점이라 하며 또 그분이 궁성을 바라보며 당시의 임금님의 명복을 빌었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했으니 이분의 덕이야 五百秋에 길이 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소백산
문화자원명
국망봉과 배점의 지명 유래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소백산국립공원/영주시
자원세부내용
순흥 읍내에서 초암사로 가는 3.5km 되는 곳에 세 그루의 수령 600년 쯤 되는 느티나무가 서있다. 이곳을 사람들은 삼괴정(三槐亭)이라고 한다. 이 나무의 남쪽 도로변에 최근 이전한 작은 정려각(旌閭閣)이 있다. 원래 이것은 배점초등학교 운동장 서편에 있던 것을 학생들의 운동에 지장이 있다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정려각에선 매년 봄가을로 동신(洞神)을 모시는 충신이며 효자인 배순(裴純)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배순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이곳에 와서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적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하였으며 행실이 착하고 특히 어버이에게 효도가 지극하였으며 조상을 모시는 정성도 지극하였다. 그 일례를 들면 가을에 타작을 할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곡식은 다른 마당에서 정결하게 타작을 해서 보관했다. 당시는 아마 소수서원을 창건하는 때라 모든 철물을 공급함으로써 상인이나 유림사회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서 퇴계선생께서 이 사람을 불러보시고 칭찬했다. 퇴계선생이 돌아가심에 쇳곳으로 상을 만들어 놓고 삼년복을 입었으며 선조대왕이 붕어하시자 삭망마다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성을 향해 곡제사를 3년 동안 지냈다. 그 슬픈 소리가 궁에까지 들리어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고 하며 그가 음식을 들고 산에 오를 때 밟은 바위에 아직도 나막신 자국이 남아있으며 궁성을 바라보며 곡했다는 산은 뒷사람들이 국망봉이라 한다. 또 배순의 점방이 있던 곳이라 하여 관명은 평장동이나 모두들 배점이라고 동명을 부른다.
자원소유자
영주시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한국서원지제도 가영문화기금 연구논문 48 서원등록(규장각소장)김상근 기재집(소수서원기)신광한 조선에 있어서 서원의 성립 청구학총 29 30 1937 1939 유홍렬 퇴계집이황 한국서원 교육제도 연구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정순목 죽계지주세붕 한국사대사전 백만사 이홍직 영주군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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