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626

사자동마을 지명유래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1. 사자동(獅子洞)의 금광소(金光沼) 내변산(內邊山) 한복판 배천내(백천[白川])를 지나 사자동 입구에 이르면 직경 6m쯤의 깊은 소가 있는데 이 소가 금광소다. 연못 속에서 찬란한 금빛이 난다고 하여 금광소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이 금광소 위에 사자앙천혈(獅子仰天穴)이라는 명당이 있어 누구나 욕심을 내는 묘자리인데, 옛날에 원씨(元氏)라는 분이 이 묘자리에 자기 선조의 묘를 써서 그 묘바람으로 크게 흥왕하고 정승이 났다고 한다. 원씨네들은 그 묘안에 훌륭한 석불을 세우고 금으로 만든 금비석까지 세워 그 위세를 크게 떨치고 있었으며, 그 자손들이 자주 이곳을 왕래하면서 실상사의 중들과 사자동 마을사람들에게 작폐가 심하여 자주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원씨네들의 거들먹거림과 행패가 얄미웠으나 그 세도에 눌려 어쩔 도리가 없었는데, 어느 땐가 실상사의 한 중이 원정승(元政丞) 묘앞의 금비석을 밤에 몰래 뽑아서 등에 업고 오다가 원씨네들한테 들켜버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중은 엉겁결에 그옆에 있는 깊은 연못에 금비석을 풍덩 던져버리고는 도망쳐 버렸다는 것이다. 원씨네들은 펄펄 뛰면서 중을 쫓았으나 잡지 못하고 다음 날 연못물을 사람을 동원하여 품었으나 물이 계속 불어나 금비석을 건져 낼 수가 없었다. 이후부터 원씨네들은 차츰 망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왜정 때 일본 사람들이 이 전설을 듣고 욕심이 나서 발동기(發動機)를 몇 대 붙이고 물을 품었는데 물이 거의 바닥 날 무렵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뇌성 벽력과 함께 큰비가 쏟아져 물이 가득 차버려 실패하고 몇번을 되풀이 하였으나 번번히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니 금비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다. 지금도 비가 올려고 하면 금광소 가득히 찬란한 금빛이 떠돈다고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변산반도
문화자원명
사자동마을 지명유래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강성칠 이금호 김영순 최효진
자원세부내용
마을의 형성시기는 잘 모르나, 1970년대에 현재 형태의 마을이 섰다고 한다. 1968년 김신조 사건 등 일련의 간첩침투 등과 관련하여 정부차원에서 독가촌을 안전지대로 이주 시키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곳 또한 1972년에 동암골, 내인동 골짜기, 실상사 앞 등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방 2칸에 부엌 1개 구조의 집). 한편 사자동은 원사자동과 원광선원 쪽의 말마동, 실상사, 내변산분소가 있는 칠부덕으로 크게 나눠진다. 특히 사자동이란 마을 명칭의 유래는 풍수지리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변산에는 24혈 명당이 있다고 하며, 그 중 사자동 마을의 뒷산이 사자앙천혈(獅子仰天穴)이기에 마을 이름을 사자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옛날 원씨(元氏)가 묘를 써서, 마을 뒷산 능선을“원천등”으로 불렀는데, 봉래구곡 중 금광소 전설과 이어진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기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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