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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산 109

오수좌굴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 오수좌(吳首座)의 한(限)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선조 때의 일이다. 산수 좋기로 유명한 무주구천동에는 계곡마다 크고 작은 사찰이 많이 있어서 수많은 승려들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 중 어느 절에 “오수좌” 라는 이름을 가진 별스러운 승려가 있었다. 그는 도술에도 능하고 힘이 장사이면서 잡기와 술과 여자까지 좋아하는 괴상한 중이었다. 오수좌는 밤이면 몰래 절간을 빠져나가 50여리나 떨어진 설천의 어느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주모와 희롱하다 돌아오곤 했다. 그 날도 설천으로 나가 주모와 술을 마시며 농탕질을 하고 절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수좌가 구천동 계곡으로 막 들어서는데 갑자기 흙먼지가 하늘을 가리고 모래바람이 폭풍처럼 일더니 오수좌를 때렸다. 얼큰한 술기운에 비틀걸음을 걷던 오수좌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려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면서 무엇이 그의 목을 번개같이 할퀴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목덜미에서 뜨거운 피가 주루루 흘러내리는게 아닌가? 술기운이 확 달아난 오수좌는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물체를 엉겁결에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물체를 땅바닥에다 패대기를 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간으로 도망친 오수좌는 이튿날 날이 밝자 어젯밤 그 물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오수좌는 동자승을 시켜 그 곳에 가보도록 했다. 동자승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곳에는 조금 과장을 하자면 집채만한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오수좌의 힘은 예사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장사였다. 호랑이와의 싸움이 있고 난 이후 오수좌는 밤 외출을 삼갔다. 스스로도 승려로서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뉘우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무풍면 삼거리에는 일찍이 홀로 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미모가 워낙 출중하여 인근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근신을 하고 있던 오수좌였지만 이 소문을 전해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본성이 다시 발동을 한 것이다. 과부를 몰래 훔쳐보니 과연 소문대로 절세미인이었다. 오수좌는 과부에게 정신을 빼앗겼고 마침내는 통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 태기가 있어 해산을 하였는데 잘생기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마을에서는 과부가 애비 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 거렸지만 여인은 잘생기고 건강한 자신의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아이는 여느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온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기어 다니더니 곧 바로 걸음마를 했다. 어느 날, 아이의 어머니가 밭을 나갔다가 일을 일찍 끝내고 해가 지기전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가 사립문을 들어서는데 집안에서 난데없이 우렁찬 호령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아! 왜 이리 꾸물거리느냐, 힘을 내라 힘을!” 여인은 기이한 생각이 들어 방문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방안에서는 아이가 좁쌀을 방바닥에 흩어 놓더니 좁쌀을 꼬마병정으로 둔갑을 시켜서는 불호령을 내리고 있었다. 꼬마병정들은 아이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여인은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의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이 갈수록 기이한 행동이 늘어만 갔다. 아이의 행동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 여인은 고민 끝에 오수좌를 만나 아이의 이상한 점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여인과 아이가 마음에 걸려 늘 마음이 편치 않던 차에 오수좌는 여인과 이야기 끝에 아이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다.“아이의 관상과 사주가 역모를 일으킬 운명이오. 부인이 잠시 괴롭더라도 아이를 없애 후환을 막도록 합시다.” “안돼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을 죽이는 부모가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아이의 어머니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그래도 오수좌는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기회를 엿보았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수좌는 여인을 설득하고 협박했다. 아이를 살려뒀다가는 종래엔 모두가 죽게된다는 것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끝내 여인도 오수좌의 설득을 받아들여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마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챈 아이는 어느날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하늘에서 내린 의로운 장수입니다. 부디 저를 해치려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굳이 저를 죽이시려면 처마 밑 추녀 끝에 있는 짚 섶으로 저의 양 겨드랑이를 찌르면 죽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고나면 이 나라는 왜적의 침입으로 국난을 겪게 될 것이고 그때는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는 오수좌의 끈질긴 설득과 아들의 비상한 기량이 두려워 이튿날 새벽,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의 양 겨드랑이를 짚 섶으로 찔러 버리고 말았다. 순간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고 천둥번개가 내려치더니 아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울음을 터트리면서 죽어갔다. 지금도 이곳의 지명 중에는 용소, 말거리, 투구봉, 쇠머리, 뼈재 등이 있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장수가 내려오고, 용소에서 용마가 나와 장수를 태우고 투구봉에서 투구를 쓰고 말거리를 달려 전장에 나가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온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어린 장수를 사람들은 유 장군이라 불렀는데, 이는 아버지를 모르는 유복자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지었다 한다. 만약 유장군과 같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지 않고 있었다면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그토록 국난을 당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오수좌는 끝내 자신의 경솔함과 이기심으로 유 장군이 죽고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국난을 겪게 된 것을 뉘우치고 한 점 빛도 들어오지 않는 굴속에 들어가 평생을 참회하며 도만 닦았다고 하는데, 그 후로는 오수좌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덕유산
문화자원명
오수좌굴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무주군
자원세부내용
오수좌(자)굴은 백련사에서 좌측으로 돌아 중봉으로 가는 계곡인 제자골(帝子谷)에 있는 넓이 3칸 정도의 천연 바위굴로, 조선말기 오수자 혹은 오수좌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살았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수자(좌)는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워 때때로 백련암에 가서 행패를 부려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안성의 한 선비가 절에서 공부하는 것을 오수자가 얕보고 싸움을 걸었는데, 선비는 미리 큰방에 불을 많이 지펴 놓고 싸움을 시작하여, 한참을 부둥켜안고 싸우다가 수자를 번쩍 들어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니, 구들장이 꺼지면서 불에 다리를 데어 고생하다가 죽게되니 비로소 절간이 조용해졌다는 전설이 있다. 오수좌(자) 굴을 '향적봉기'에는 계조굴(戒祖窟)은 백암의 북쪽에 있는데, 바위집이 큰집 하나를 들일만하며 필시 계조가 거처하였기에 계조굴이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려산행기(遊廬山行記)'에는 월산인계수자(月山人戒殊者)가 80세에 제자를 모아놓고 경문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오수좌 굴을 계조굴, 계수굴(戒殊窟) 등으로 불러왔으나 근래에는 오수좌(吳首座) 굴, 또는 오수자(吳竪子) 굴 등으로 불리고 있다.
자원소유자
국유지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사)설천면발전회,2004 >,(사)설천면발전회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2009.4 >,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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