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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 산 60

가마봉과 사람바위 전설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구눙 토기를 사용할 때니까 백제 이전의 이야기인 듯하다. 지금의 가마봉 아래에 한 석공이 아내와 딸 둘을 데리고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석공은 솜씨가 좋아서 여기저기로 불려다녔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는 항상 먹을 것을 가득 가지고 오므로 먹을 것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딸들도 마음씨가 고왔고 착실하게 일을 하였다. 더구나 석공의 아내는 천하의 미인이어서 이런 산골짜기에서 살기에는 아까와 보였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석공은 아들 타령을 하는 아내에게 항시 말하기를 "딸이 둘인데 뭐가 걱정이야."하며 오히려 석공은 아들 타령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재미있게 살았으나 딸이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석공은 독기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팔팔 뛰다가 죽었다. 객지에서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인데 부군이 급사함에 따라 집안 사정은 변해갔다. 아직까지는 집에서 곱게만 자라던 딸들도 일을 해야했고 아내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산 속에 가서 산나물을 뜯어다가 공주 읍내에 내다 팔았다. (출처: 공주의 맥) 원님의 협박에도 목숨을 버릴 정도로 정조를 지킨 열녀 이야기이다. 모진 짓을 한 원님은 결국 열녀의 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권선징악적인 설화 유형이다. (출처: 공주시 디지털 공주문화대전 홍페이지) 그러던 어느날 석공의 아내는 깊은 산중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마침 사냥나왔던 원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금강을 끼고있는 작은 고을의 원님인 그는 석공의 아내를 보자 홀딱 반했다. 원님은 사냥나온 부하를 시켜 석공의 아내를 작은 고을까지 끌고 갔다. 석공의 아내는 끌려가면서도 집에 보내달라고 통 사정을 하였으나 성격이 우락부락한 원님은 허락해 주지 않았다. 석공의 아내를 고을까지 끌고 온 원님은 그날 저녁 자기 시중을 들으라고 했으나 석공의 아내는 완강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날 끝내 거절하는 석공의 아내를 이튿날 새벽 일찍 부하를 데리고 사냥길에 나가면서 석공의 아내를 꽁꽁 묶어 뒤따르게 하였으며 큰 가마솥을 하나 가지고 떠났다. 원님은 석공의 아내를 만났던 부근에다가 가마솥을 걸고는 물을 붓더니 불을 지폈다. 그리고는 사냥을 한참 하고 돌아오더니 잡아온 꿩을 산 채로 가마솥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석공의 아내 눈 앞에 대고는 "내 시중을 들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거야. 그래도 시중을 들지 않겠느냐?" 하고 쳐다봤다. 그러나 석공의 아내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몸이 뜨거운 물에 삶아져서 갈기갈기 찢어지든 창 칼에 피를 흘리며 죽든 짐승밥이 되어 죽든 그것은 운명이외다. 허나 남편이 죽은 지 석달이 못되어 다른 남자를 섬긴다는 것은 못할 일이외다."하고 외면을 했다. 이에 원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석공의 아내를 번쩍 들어 끓는 가마솥에 집어던졌다. 끓는 가마솥에서 죽으면서도 석공의 아내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집을 나간지 이틀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딸들이 찾아나섰다가 며칠 후 비참하게 죽은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는 통곡을 하며 근처에 묻었으며 그 후부터는 복수할 생각에 딸들은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들은 산 속에서 무예를 익혔다. 어머니가 죽은 지 십 년 만에 그들은 사냥나온 원님을 보았다. 딸 자매는 뗏집에서 나와 똑같이 화살을 원님 가슴에 겨누었다.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를 떠나서 남쪽으로 가서 살았다 한다. 석공의 아내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며 지금도 비가 오는 밤이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에는 큰 울음소리로 자기의 원통함을 알린다고 전한다. 그리고 산 중턱에 솥을 걸었던 자리에 사람을 업고 있는 듯한 바위가 생겼다. 사람들은 이 바위는 석공의 아내가 변한 바위라 하여 라고 부르며 이 산은 이라고 부른다. 우리 아낙네들의 거룩한 정절이 숨어있는 뜻있는 바위이다. (출처: 공주의 맥)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계룡산
문화자원명
가마봉과 사람바위 전설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계룡산국립공원 상신리에는 솥봉 또는 가마봉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해발 426m 높이에 뾰족한 봉우리와 함께 바위들이 뒤엉켜서 마치 짓궂은 아이들이 흙장난하면 빚은 듯한 모양이다. 바로 이 가마봉에는 석공인 지아비를 잃고 억울하게 죽은 여인과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한 복수를 담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는 계룡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마을로, 뒷산을 ‘솥봉’ 또는 ‘가마봉’이라 부르는데, 아주 오랜 옛날 산 아랫마을에 석공 부부와 두 딸이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석공이 독이 있는 음식을 잘못 먹고 급사하게 되자, 그의 아내와 두 딸은 산속에서 나물을 캐고 나무를 해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공의 아내가 산나물을 뜯고 있다가 마침 사냥을 나온 인근 고을의 원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원님은 한눈에 이 여인에게 반하여 억지로 끌고 가서 자신의 시중을 들라고 명령하였다. 석공의 아내는 완강하게 거부하였고, 원님은 만약 끝까지 싫다고 한다면 가마솥의 끓는 물에 집어넣어 죽이겠노라고 협박하였다. 그래도 여인이 끝내 싫다 하니 원님은 처음 만났던 그 산속으로 여인을 다시 데리고 가 부하들로 하여금 가마솥을 걸게 하고 물을 끓인 후 사공의 아내를 빠뜨려 죽이고 말았다. 그 후 석공의 두 딸이 어머니의 처참한 시신을 발견하고, 통곡을 하며 복수를 다짐한 끝에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냥 나온 원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죽였다. 죽은 여인의 혼은 이승을 맴돌며 지금도 비오는 밤이나 안개가 낀 날에 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산중턱에 솥을 걸었던 자리는 사람 형상의 바위가 생겨나 ‘사람바위’ 혹은 ‘아내바위’라 불렀고, 그 산은 솥봉 또는 가마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원소유자
공주시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公州市 公州文化院鄕土文化硏究所, 1992, >, 공주합동출판공사 忠淸南道, 1994, >, 한밭공론사 이길구, 1997, >, 대문사 충청남도 계룡출장소, 1999, >, 충청남도 계룡출장소 임재해, 1999, >, 지식산업사 공주시, 2002, , 공주시지 편찬위원회, 대문사 공주시, 2007, 6권, 공주문화원 함복희, 2007, >, 우리문학회 공주시 디지털 공주문화대전 홍페이지, http://gongju.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702337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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