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영문주소
1181 Seolcheon-ro, Seolcheon-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남해 충렬사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남해 충렬사는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선조 31년(1598) 11월 19일에 순국하여 아산 현충사로 이장되기 전에 잠시 이곳에 안치되었던 곳으로 전하며 공이 순국한지 35년 후인 인조 11년에 이 고장의 선비 김여빈과 고승후에 의하여 처음으로 초옥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신 후 배향한 곳이다. 노량 충렬사 창조집문(1633년)에 “슬프다. 노량은 곧 충무공 이선생이 나라에 몸 바치신 곳이다.- 중략 - 지난 무진년(1628)에 이 고을 유학 김여빈이 이를 슬퍼하여 동지 고승후와 더불어 여론을 앞장서 일으키고 이끌어 바야흐로 재력을 모으고 집안의 자제와 집안 노비로 터를 닦고 돌과 나무를 운반하여 한칸 초옥을 처음으로 세우고 - 하략- .”김여빈과 고승후가 초옥 사당 한 칸을 세움으로써 시작한 것을 계기로 공의 후손과 국가에서 성지로 가꾸고 보존하였으며 1726년에는 노량서원을 개원하여 유림으로 하여금 보존 관리하게 되었고 1746년에는 호충암을 짓고 화방사의 승장과 승병으로 하여금 수직호사(守直護祠) 하도록 하였으나 1871년에 대원군 향사 철폐령에 의거 훼철되는 수난을 겪었다. 1921년에 본 고장의 사림 박진평과 정민주가 비각을 중건하고 이듬해 보존회가 조직되어 시설물을 복건함으로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현재는 (사)남해충렬사의 소유로 남해군에서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다(남해역사연구회). 남해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충렬사비가 있다(문화재청). 조선 인조 원년(1545년 4월 28일)에 출생하여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倭賊)을 막아 싸우다가 선조(宣祖) 31년(1538년 11월 19일)에 전사한 충무공(忠武公)의 유해(遺骸)가 처음 안치되었던 곳으로 그 후 아산(牙山) 현충사(顯忠祠)로 이장(移葬)되고 지금은 봉분만 있는 가분묘(假墳墓)가 후원(後園)에 남아 있다. 공의 순국 후 34년이 지나 초사(草舍)와 충민공비(忠愍公碑)가 세워졌고 효종(孝宗) 9년(1658)에 사당을 건립하고 비도 다시 건립하였다. 현종(顯宗) 3년(1662) "충렬사(忠烈祠)"란 사액(賜額)을 받았고 광무(光武) 3년(1899)에 공의 11대손 민승(敏承)이 중수(重修)했고 또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3호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 면적 1045평에 재실(齋室) 1동 비각 (碑閣) 1동 외삼문(外三門) 비 4기 가분묘 1기가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한려해상
문화자원명
남해 충렬사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남해군
자원세부내용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있는 사우(祀宇)로 임진왜란 때 관음포(觀音浦)에서 순국한 이순신의 영(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충무공 사후 34년째 되던 1632년(인조 10), 이곳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드렸다. 1658년(효종 9)에 집을 헐고 사당을 건립하여 봄·가을로 제향하게 하였으며 비도 다시 세웠다. 1663년(현종 4)에 충무 충렬사와 함께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 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썼다. 충무공의 시신을 이곳에 임시 매장하였다가 이듬해에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장하여서 지금은 가분묘(假墳墓)만 남아 있다.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내삼문(內三門)·외삼문·재실·강당과 일각문(一閣門) 등이 있다.
자원소유자
사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참고문헌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국립공원관리공단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4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남해역사연구회(http://www.nhistory.kr) 문화재청(http://www.cha.go.kr) 남해군 2010 남해군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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