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산 47-1
영문주소
543-21 Gapsa-ro, Gyeryong-myeon, Gongju-si, Chungcheongnam-do

공우탑 전설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사람이 동물에게도 은혜를 베풀면 그 동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살상을 하지 않는 불문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많이 전하여 진다. 여기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서 있는 삼층석탑인 공우탑만 하더라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 보면 살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다는 의미가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화를 입지 않은 갑사는 그 다음의 정유년에 다시 침입해 온 왜적에게 끝내는 모두 불태워져 버리고 말았다. 불문이란 어느 나라나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믿었던 우리나라의 불문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절간이 타 버리자 잿더미 위에서 공을 드릴 수 없었던지 스님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헤어져 갔다. 그러나 몇 몇 스님들은 폐허를 딛고 설 그 기회만 바라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갑사의 핵심을 이루는 인호 스님과 경순 스님, 성안 스님, 병윤 스님은 상의하기를 이렇게 않아 있다고 누가 갑사를 재건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우리가 분발해서 절간을 짓자고 합의하고 각자 바랑을 멘 채 피나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팔도강산을 누비고 다녔다. 어느덧 그들이 일을 시작한지 7년이란 세월 속에는 흉년의 해가 많았다. 그들은 다리가 부르트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플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을 마셨다. 그런 피땀이 보람이 됐던 지 7년을 모은 돈이 결국 대웅전을 하나 세울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합의 끝에 일을 시작했다. 많은 인부가 모여들고 집은 척척 지어져 갔다. 헌데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돈이 많이 소비되어 계획대로 남은 돈을 가지고 대웅전을 완성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부터 주지스님격인 인오 스님은 걱정이 태산같이 쌓이게 되었다. 그는 잠을 잘 때도 대웅전 생각만 했다.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하루 저녁엔 꿈에 소 한마리가 집을 짓고 있는 들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 소는 일꾼들이 이리저리 몰아쳐도 들은 척도 않고 자기 가까이 오더니 머리를 숙인 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스님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셨으면 끝을 맺어야지요. 스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집을 지어드리지오.” 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인호 스님은 꿈에서 깨었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봤다. “아니 저 소가…” 하마터면 인호 스님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스님이 소를 발견하자 소는 어디론가 뛰어 갔다. 그 이튿날 인호 스님이 새벽에 눈을 뜨자 소가 지붕 위에 올린 서까래를 어디선가 운반해서 가득히 쌓아 놓곤 다시 어디로 뛰어가곤 했다. 집을 완성하려면 서까래와 기와가 필요했다. 서까래를 가득 채워놓은 소는 이번엔 기왓장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 많은 기왓장을 사흘이 안 되어 마당에 꽉 채워 놓았다. 그래도 소는 뛰어 다녔다. 스님 네 사람이 앉아서 “무엇이 없는데…” 이 말이 새어나오기 바쁘게 물건을 구해 왔다. 마루에 깔 나무가 쉬 상할 것 같아서 두터운 나무를 깔아야겠다고 한 스님 이 말했다. “마루만 깔면 이젠 단청하기야 쉽지 않습니까 마루에 향나무를 서너 줄에 하나씩 끼워서 놓으면 천하에 없는 절간이 되겠습니다만…” 이 말을 어찌 들었는지 소는 마루에 깔 나무를 날랐다. 그러다가 며칠 뜸하더니 향나무를 운반했다. 향나무를 운반하는데 소는 몇 번이나 쓰러지는 것이었다. 소는 뛰어다니다 지친 것이다. 거기다가 향나무를 백두산 근처에서 베어 왔으니 오죽이나 피곤했을까? 그래도 소는 마루에 깔 향나무를 모두 준비하더니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 스님들은 대웅전이 완성될 때 그 소의 노고에 감사하며 탑을 하나 세웠다. 그 탑이 공우탑인데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계곡을 타고 가면 길가에서 쉽게 볼 수가 있다. [출처] 충청남도, 1994, >, 한밭공론사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계룡산
문화자원명
공우탑 전설
보존상태
보존처리 확인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해당없음
자원세부내용
조선중기 정유재란 때 전소된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세운 소에 대한 기념으로 건립된 석탑에 관한 이야기로서 주요 모티브는 꿈과 초월자의 지원으로서 서사문학에서 꿈은 이상세계와 현실공간을 잇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공우탑 전설에서 소는 초월자의 지원을 현실세계에서 수행하는 존재로서 초월자가 보낸 대행자로고 할 수 있다.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 때 갑사(甲寺)는 전소(全燒)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까맣게 폐허가 되어 버린 절터에는 잿더미만 푸석푸석할 뿐이었다. 예전의 웅장(雄壯)했던 절의 모습이 떠올라 주지승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였다. 절을 다시 세워야 하는데 사람도 없었고 물자도 전혀 없었다. 주지는 절을 재건할 계획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막막한 마음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 때 하늘에서 누런 소 한 마리가 폐허가 되어 버린 법당 마당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마당 가운데 자리 잡은 소는 마치 사람처럼 입을 열어 말을 하였다. “제가 절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소의 말을 듣는 순간 주지는 놀라서 잠을 깨었다. 한 바탕의 꿈이었다. “별 묘한 꿈도 다 있군. 정말 소 한 마리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주지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마당 쪽에서 소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정신이 번쩍 난 주지가 눈을 돌려 바라보니 과연 황소 한 마리가 법당 마당 가운데 앉아 있었다. 황소는 그 날부터 매일 어딘가를 갔다 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소의 등에는 절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 기와, 양식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마침내 절이 완공되었을 때 소는 지치고 병들어 죽고 말았다. 주지는 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소의 주검을 거두어 묻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 탑을 공우탑(功牛塔)이라고 이름 지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公州市 公州文化院鄕土文化硏究所, 1992, >, 공주합동출판공사 忠淸南道, 1994, >, 한밭공론사 공주시, 1996, >,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 공주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공주시, 1997, >, 공주시 공주시, 1992, >, 공주문화원 공주시 디지털 공주문화대전 홈페이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4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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