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산 4-3

남해 양아리 석각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기념물 6호로 지정되었다. 동양 최고(最古)의 문자로서 가로 7m 세로 4m의 평평한 바위 위에 가로 1m 세로 50㎝ 넓이로 새겨져 있다. ‘서불제명각자(徐市題名刻字)’라고도 하는 그림문자로 상주면 양아리에서 금산(錦山) 부소암에 오르는 산중턱 평평한 자연암에 새겨진 특이한 형태의 조각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 시황제(始皇帝)의 명령으로 방사(方士)인 서불이 삼신산(三神山)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이곳 남해 금산을 찾아와 한동안 수렵을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새겨 놓고 갔다고 한다. 그러나 시황제 때는 이미 한문자(漢文字)가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의 고문자(古文字)로 추측되기도 한다. 아직 해독되지 않고 있다(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금산 부소암에 오르면 넓고 평평한 가로 7m 세로 4m의 지면 바위에 서상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상형문자 이전의 문자로서 최소한 2000-3000년 전의 고문자가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다. 이 고문자는 가로 1m 세로 50㎝에 새겨져 있는데 지금까지도 해독을 못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양아리 계곡에도 또 하나 이와 비슷한 고문자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었고 또한 밭 언덕 받침돌에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각석에 새 모양의 선화가 발견 되었다. 더욱이 양아리 벽련마을 뒷산 마루 바위에서도 고문자가 발견되었으니 이러한 일련의 고문자와 선화의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남해읍 평리 야촌과 창선면에서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으니 남해의 고대문화 형성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겠다. 상주리 석각은 현재 여러 설이 있으니 그 중 하나가 진시황조의 서시(徐市)가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남겼다고 한다. 고문자는 서시가 자기 이름을 새겨 두었다는 "서시과차(徐市過此)"설과 "서씨기병일출(徐氏起幷日出)"이라는 여섯 글자라는 설이 있다. 규모는 가로 7m 폭 4m이다(국립문화재연구소).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한려해상
문화자원명
남해 양아리 석각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남해군
자원세부내용
금산 부소암의 평평한 바위 위에 새겨진 그림문자이다. 가로 7m 세로 4m 정도 되는 너럭바위 오른쪽 부근에 그림 모양 문자 혹은 문자 모양 그림이 새겨져 있다. 흔히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의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고대 글씨라고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으로서는 무슨 글씨인지 알아볼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글씨가 아닌 그림이 아닐까 싶어 거북이 등딱지 무늬려니 여겨보지만 간혹 하늘 천(天)자처럼 뚜렷하게 읽을만한 글씨도 보여 여간 아리송한 게 아니다. 이 상주리 석각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도 구구하다. ‘서불이 해 돋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 절하나’는 뜻의 서불기배일출 여섯 자로 읽는 이도 있고 훈민정음 이전의 고대문자 혹은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보는 이들도 있다. 마을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시종 서불이 동남동녀 500명을 거느리고 이곳을 지나면서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긴 글이라고 한다.(사방 가로 1m 세로 50cm)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참고문헌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국립공원관리공단국립문화재연구소(http://www.nrich.go.kr)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http://gsm.nricp.go.kr)
최초모니터링년도
기타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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