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10-3
영문주소
694 Boriam-ro, Sangju-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보리암(금산 보리암)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 남해의 벽파에 발등을 씻음 허리에 구름 띠를 두르고 서 있는 금산의 이마에 자리잡고 앉아 망망한 남해의 하늘 끝을 내려다보고 잇는 보리암에는 신비로운 기도 영험이 매일 같이 나타난다. 크게는 나라를 얻는 일로부터 작게는 개인의 행복을 비는 일까지 이 도량에 상주하시는 관세음보살이 기구하는 중생의 처지에 심정을 살펴 알맞게 쓰다듬어 주시기 때문이다. 보리암의 창건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가락국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중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는 설이다. 장유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이라고 한다. 중인도의 아유타국 공주가 허씨 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아유타국이 멸망하여 인도와 인접해 있는 중국으로 옮겨와 있을 때 중국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김수로왕이 허 공주와의 사이에서 10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7왕자를 장유 선사가 데리고 출가를 하고 나머지 3왕자 중의 한 왕자에게 허씨 성을 주어 어머니 성을 이어가게 하고 다른 두 왕자는 왕통을 이어가게 했다. 7왕자를 데리고 출가한 장유 선사가 거쳐간 곳은 김해의 장유암, 가야산 칠불사, 지리산의 칠불암 등 영남 일대에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아 온 곳이 금산의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남해안에서 가장 잘 보이면서도 수려한 산의 자태와 구름이 스쳐가면서 하늘, 땅, 바다에 일으키는 천태만상의 변화가 사람을 매혹시키기 충분할 뿐더러 가락국이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이곳을 수도처로 정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7왕자 데리고 이 산에 들어온 장유선사는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암자를 짓고 아유타국에서 모셔온 관세음보살을 모시게 되었다. 지금 봉안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바로 그 때의 그 불상이라고 한다. 이 불산은 높이 약 30cm정도의 3쪽으로 된 평판을 후불로 하고 있는데, 중앙이 본존인 관세음보살, 그리고 좌우에는 선재 동자가 표현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후불을 이루고 있는 판쪽은 대나무로 대강 너비가 18cm쯤 될 것 같은데, 대나무쪽이 이 정도라면 그 대나무의 크기는 반아름쯤은 충분히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런 대나무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다. 장유선사가 창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장유선사 창건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리암전 3층 석탑'이 있다. 지금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앞쪽에 있는 이 탑이 허황옥 공주가 타고 온 배의 밑바닥에 깔았던 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이한 것은 이 탑의 2층으로 된 기단의 상단, 남쪽으로 향한 면의 중간 이음줄 위에서는 자침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을 배고는 이 석탑 어느 부분에 놓아도 자침은 정확하게 남북을 가르키는데 이곳에서 만은 자침은 서쪽으로 기울어 움직이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장유선사는 이렇게 수도처를 마련하여 놓았으나 이곳에 오래 있지 않고 내륙으로 들어갔다. 7왕자를 출가시킨 수로왕비가 왕자들을 보거 먼길을 빈번히 찾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이곳을 떠나 가야산으로 갔다. 이렇게 보면 보리암의 창건 연대는 김수로왕의 연대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리암의 역사는 1800년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주장은 신라 원효대사 창건설이다. 원효대사 천하를 유행하다가 이 산의 경승에 끌려 찾아오게 되었는데, 왼 산이 모두 방광하듯 빛을 뿜았다. 스님은 놀라면서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고 붙이고 보광사를 지었다고 한다. 훗날 이성계가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고, 그 감사의 뜻으로 산 이름을 금산이라 하였다. 이 보광사를 보리암의 전신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으나. 보광사는 보리암의 등 뒤에 있다가 없어져 그 유허만 남아 있다. 신라 신문왕 3년에는 보리암을 왕실의 기도처로 지정하기도 했고 조선조 현정 원년(1660년)에는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한려해상
문화자원명
보리암(금산 보리암)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보리암
자원세부내용
규모: 목조와가 정면 3간, 측면 2간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남해 보광산(현, 금산)에 입산수도하기 위하여 산록에 보광사를 지음, 그 사운이 융성해져 이 보리암을 세웠다는 남해 고사찰 중 하나이다.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도량
자원소유자
보리암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1. 남해군지편찬위원회. 2010. 남해군지. 씨티플랜. p. 950. 2. 김우영. 2001. 화전고을 땅이름 유래를 찾아서. 문성인쇄사. p. 320.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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