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2118
영문주소
73-34 Nodo-gil, Sangju-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전김만중유허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기사사화에 연루된 김만중의 유배지로 지금은 초옥터와 사용하던 우물이 있고 남해 역사 중 유배문화의 중요한 사료임. 노도에는 西浦 金萬重의 남해 謫舍와 그가 직접 팠다고 전하는 우물 등이 있다. 그의 적사는 지금의 마을과는 반대 방향인 큰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에 조성된 계단식 경작지의 중복에 있다. 단상으로 구릉의 사면을 정지하여 터를 확보하였는데 그 면적은 약 40평 정도에 이르나 우물을 기준으로 한 입구측의 면적은 20평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만중의 사후 초옥이 폐허가 된 이후 경작지로 활용되면서 재정비가 가해진 듯 지표상에서 구조물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한려해상
문화자원명
전김만중유허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남해군
자원세부내용
남해 노도(櫓島)는 조선 숙종 기사환국에 연루되어 3년 간 유배된 서포(西浦) 김만중의 유배지이다. 노도라는 이름은 배의 노를 많이 만든 것에 따른 명칭이며 삿갓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삿갓섬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유배지로 이름 높던 남해도 남쪽에 있으며 남해도에서 배편으로는 10분 정도 걸린다. 유허지에는 초가집 터와 그가 직접 팠다고 하는 우물이 있다. 그 근처에는 묘소 터가 있으며 유허비는 선착장 입구에 있다. 유배된 김만중은 스스로 옹달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솔잎 피죽을 먹으며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썼다. 그와 적사(謫舍 유배지에서 거주하는 건물)는 지금 마을과는 반대편 큰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의 계단식 경작지 중턱에 있다. 구릉의 비탈진 곳에다 집터를 닦았다. 약 40평 정도의 규모이나 우물을 기준으로 본 입구쪽 면적은 20평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만중의 사후 폐허가 된 이곳이 경작지로 활용되면서 뚜렷한 집터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1997년 남해문화원에서 초옥을 복원하고 안내문을 설치하는 등 주변을 정비하였다. 유배문화가 서린 남해의 중요 유산이다.
자원소유자
미상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4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국립공원관리공단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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