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산 417-12

전김만중가장묘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김만중의 적사에서 북북서측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진 능선의 돌단부에 있다. 이곳은 기사환국으로 남해에 유배 온 김만중이 적소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 뒤 가장되었던 곳이다. 무덤의 형태는 원형봉토분이며 중앙에는 지름 1m 가량의 함몰부가 있다. 마을에서는 이 무덤을 ‘노지나묏등’이라 부른다.「西浦年譜」에 의하면 김만중은 1692년 4월 30일 사망한 뒤 5월 중에 아들 鎭華가 다시 殮하여 고향으로 모셔가 9월 27일에 백씨인 만기가 묻힌 광주 선영에 안장되었다. 김만중은 자가 重叔 휘가 萬重 아명이 船生 아호가 西浦 시호가 文孝公이다. 서포는 당대에 국민문학론을 제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범동양적인 지식의 경험을 토대로 문학창작에 임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작가로 한국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인물이다(경남발전연구원). 서포 김만중 선생이 돌아가신 후 1692년 4월 ~ 5월까지 묻혀있던 가묘이며 현재 소유 관리자가 불분명하여 관리되고 있지 않음.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한려해상
문화자원명
전김만중가장묘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미상
자원세부내용
김만중의 적사(유배 건물)에서 북서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기사환국으로 남해에 유배온 김만중이 생을 마감한 뒤 가매장되었던 곳이다. 무덤은 원형봉토분이며 중앙에는 폭 1m 가량이 꺼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 무덤을 ‘노지나묏등’이라 부른다. 「서포연보(西浦年譜)」에는 김만중이 1692년 4월 30일 사망한 뒤 5월 중에 아들이 다시 염(殮)하여 고향으로 모셔가 광주 선영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세도가에서 태어나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 높은 직책을 두루 거쳤다.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난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그가 속했던 서인이 실각하였고(기사환국 己巳換局 1689 숙종 15) 김만중 역시 관직을 박탈 당하여 이곳 남해 노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노도에서 생활한 3년 동안 국문소설인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짓게 된다. 귀양지에서 어머니 윤씨의 부음을 들은 김만중은 「정경부인 윤씨행장」을 쓴 뒤 1692년(숙종 18) 56세의 나이로 노도에서 생을 마쳤다.
자원소유자
미상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4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국립공원관리공단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