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 4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삼국사기』기록에 의하면 신라35대 경덕왕 재위 시 백률사로 행차 하였을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파게 하니 큰 돌에 사면불이 새겨져 있음을 알고 절을 짓고 이름을 굴불사 라 하였다. 따라서 창건연대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어느 시기에 왜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통일신라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면석불만 그 유지가 남아 옛 사찰의 터를 짐작케 하며 아울러 석불만이 불자들의 신앙대상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굴불사 사면불에 대해서는 1910년 이전에 일본인에 의해 현황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41년 간행한 관야정(關野貞)의 『朝鮮の建築と藝術』속에서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의 유적」이란 제목으로 굴불사 석불을 설명 하였다. 굴불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85년 8월에 착수 하여 10월에 완료 되어 3개월이 소요 되었다. 발굴결과 서쪽에 있는 삼존불의 연화대좌 동쪽면 약사여래의 무릎 이하 부분이 확인되어 불상의 전체 모습을 알게 되었고 사면석불을 중심으로 조영되었던 정면1칸 측면 3칸의 법당터가 확인 되었다. 또한 고려시대 층에서는 동사라고 새겨진 명문 있는 와편을 비롯하여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사방불은 원래 동서남북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으로 사방 정토를 상징하며 대승 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이다. 사면석불의 서면에는 사방정토를 주제하는 아미타삼존불 동면에는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 남면에는 석가삼존불 북면에는 2구의 보살상이 있다. 특히 북쪽의 두보살상 가운데 왼쪽에는 선각으로 표현된 십일면의 얼굴과 여섯 개의 손이 달린 십일면육비의 관음보살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부조로 표현된 보살상이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8
자원관리자
경주시
자원세부내용
경주 북쪽의 소금강산 기슭에 있는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동서남북 각 방위로 새겨져 있는 사면불이다. 1910년 처음 조사하였으며 1985년에 발굴하여 출토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경덕왕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쪽면의 삼존상이 주존불이며 아미타여래로 추정된다. 본존상의 불신은 바위면에 부조하고 머리는 따로 조각하여 얹었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이다. 양협시 보살은 모두 삼곡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쪽면에는 대좌만을 제작한 삼존불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석가삼존불로 추정되며 우협시보살 전체와 본존의 머리는 일제강점기에 떼어 내어 훔쳐 갔다고 한다. 동쪽면에는 왼손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북면에는 돋을새김한 보살입상과 왼쪽에 11면 6비 관음보살입상이 선각되어 있다.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학자 간에 의견차가 있다. 하지만 각각 순차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대략 8세기 전반에서 8세기중엽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박방룡 1986「금강산개관」『굴불사』(유적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연구소 경주고적발굴조사단. 김리나 1975 「경주굴불사의 사면석불에 대하여」『진당학보』39집 진단학회 문화재연구소 경주고적발굴조사단 1986 『掘佛寺遺跡發掘調査報告書』 문명대 1968 「한국석굴사원의 연구」『역사학보』38집 역사학회 조선총독부 1917 『조선고적도보』 제5책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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