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 17

경주 탈해왕릉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사적 제174호이며 1969년 8월에 사적으로 지정 되었다. 앞에 있는 숭신전은 1980년대 반월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이 고분이 언제부터 탈해 왕릉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삼국사기』나『삼국유사』에 관련기록이 보이다가 조선시대 사료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며 1900년을 전후한 대한제국 말기 이후부터 전칭되어 오는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동악대왕이자 동악신인 탈해왕에 대한 석씨일족의 제사는 문무왕 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관련문헌을 참고할 경우 토함산 정상의 탈해사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에 가서 석씨 문중에서 시조왕의 능이라도 찾자는 결의 아래 『삼국사기』의 성북을 근거로 하여 현재의 동천동 능을 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경주 탈해왕릉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경주시
자원세부내용
신라 4대왕인 탈해왕(재위 57∼80)의 무덤으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경주 시가지 서북방 표암 근처에 있다. 능의 전면은 평지이지만 후면은 얕은 경사를 이루고 있다.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서 크기는 지름 14.3m 높이 4.5m이다. 겉으로 보아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분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으며 호석(護石)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전면에 놓여 있는 상석(床石)은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왜(倭)의 동북 1000리 다파나국 왕비가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처음에는 금관국(김해)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辰韓)의 아진포에 닿았는데 노파가 거두어 키웠다 한다. 탈해는 신라 최초의 석씨 왕이 되었다.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이근직 1997 「신라왕릉의 전승과정연구」 「수상논문집」전국문화원연합회 김상기 1967 「탈해사의 유래」 한국일보 4월 16일자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