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 10
영문주소
45 Sanae 1-gil, Songnisan-myeon, Boeun-gun, Chungcheongbuk-do

법주사 송이놀이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송이놀이’의 성격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최남선(崔南善)이, 박석진(朴石진) 노스님에게 듣자와 안 일인데, 속리산 법주사에서는 매년 설날이면 ‘송이놀이’라 하여 사중(寺衆)이 큰 남근을 나무로 만들어 떠 메고 주종어가(主從御駕)의 부서를 정비한 후 엄숙한 행렬로서 절 안의 신당(神堂)에 나아가 남근 중심의 작법(作法)을 행하고 그것을 신 앞에 바치는 속이 있어서 근년까지 행하고 없어진 지가 얼마되지 아니하였다 한다. 하여 법주사에서 설날 사중(寺衆)들이 나무로 만든 남근을 가지고 놀다 신당에 바치는 ‘송이놀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송이’는 승려들이 쓰는 ‘남근’의 은어이므로 송이놀이는 남근놀이라는 뜻인데 이능화(李能和)는, 자재천왕(自在天王)은 불가에서 욕계마왕(欲界魔王)이라 하는데 부처가 성도할 때 이 마왕이 방해한 것은 불서(佛書)에 실려있다. 그런데 법주사(法住寺)에서 이 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며 마력이 있기 때문에 음탕한 놀이를 만들어 제사하였다고 하나 사실은 그 신을 욕보이는 것이다. 하였으나 사천왕상(四天王像)과 금강역사(金剛力士)까지 모신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법주사에서 욕계마왕을 달래려고 ‘송이놀이’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속리산신제의 뒷풀이인 축제의 놀이로 본다. 즉 고대 부족국가의 천신제인 부여의 ‘영고(迎鼓)’나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에는 모두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하였는데,이것은 제천의식에서 뒷풀이로 이루어지는 ‘축제’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술을 마셨다”는 것이 잔치이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것은 놀이인데 이 잔치와 놀이는 축제의 기본요소이다. 따라서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속리산신제의 뒤에 이루어지는 놀이라는 점에서 본명히 축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남근놀이는 태초에 신이 가졌던 신성한 행위의 모범적 가치와 기능을 주기적으로 재연하는 것이고 일상생활과 구별되는 폐쇄된 우주이자 순수한 공간이며 또 집단생활의 권리아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한 불교사원인 법주사에서 속리산신제의 뒷풀이로 승려들이 ‘송이놀이’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송이놀이’의 내용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김영수(金映遂)가,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올린 후 곧 이어서 미리 준비하여 기대하고 있던 - 많은 하인을 거느린 - 군수(郡守) 행차가 위의를 갖추고 들어와 그 제단 부근에 있는 양화루(兩花樓)에 좌정한 후 그 군수란 이가 소위 이방(吏房)이란 사람을 불러서 분부하기를 “대부인께 바칠 것이니 어떻게 하던지 큰 놈 하나를 구하야 들여라”고 하면 이방이 “예”하고 나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들어와서 나무로 만든 고추만한 남근 1개를 내보이면서 “이만하면 쓸만하온지?”하고 말한다. 군수가 “못 쓰겠다”하면 이방이 나가서 가지만한 놈을 가져온다. 이 모양으로 물리치면 다시 오이만한 놈을 가져오고 나중에는 물방아 공이만한 놈을 가지고 와서 말하면 군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쉬운데로 쓰겠다”고 허락한다. 군수는 최후의 것을 가지고 “대부인께 드리겠다”고 하면서 절의 변소로 가지고 가서 한 구석에 세워두고 나온다. 하였다. 이 송이놀이는 절안의 노스님들은 세조(世祖)께서 법주사에 행차하였을 때에 따라온 상궁(尙宮) 한 분이 어는 젊은 승려를 사모하였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병을 얻어 죽었다. 그 후로 법주사에 있는 소위 행실이 얌전하다는 젊은 승려가 병에 걸려 죽음으로 남근놀이를 하여 상궁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고 하여 그럴듯한 근원설화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재앙을 막기 위한 주술적 놀이라고 해도 마지막에 남근인 방아공이를 법주사 신당이 아닌 변소에 갔다 두었다는 것은 속리산 여신을 모욕하는 놀이다. 이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속리산 산중사람들이 속리산 여신에게 남근을 공물로 바치기 전에 남근을 들고 놀이로 한 뒤에 신당에 바치는 남근공의를 모방한 승려들의 모방놀이에서 출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남선(崔南善)은 남근을 “신당에 바친다”고 하였지만, 김영수(金映遂)는 “변소에 갖다 둔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처음에는 남근을 신당에 바치다가 나중에 법주사의 변소에 갖다두는 놀이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출처 : 보은문화원 홈페이지 참고 : 한국지역진흥재단 홈페이지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속리산
문화자원명
법주사 송이놀이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0
자원관리자
보은군(문화원)
자원세부내용
법주사에서 설날 사중(寺衆)들이 나무로 만든 남근을 가지고 놀다 신당에 바치는 ‘송이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송이'는 승려들이 쓰는 ‘남근’의 은어이므로 송이놀이는 남근놀이라는 뜻이다. 법주사에서 ‘송이놀이’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일로 현재는 법주사의 송이놀이는 속리산신제 뒷풀이인 축제의 놀이로 보고 있다. 보은문화원이 발행한 「보은 속리산의 민속문화」라는 문헌에 따르면 송이놀이는 조선 말기 법주사의 승려들이 나무로 남근(男根)을 깍아 붉은 칠을 하여 속리산 여신에게 공물로 바치는 남근공희가 연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놀이를 스님들이 재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산외면 풍물보존회에 의해 재연되고 있으며, 송이놀이는 사또행차, 물건(송이)찾기, 오방기 놀이 등 3막으로 구성됐고 25분 분량을 연극화하여 젯상과 제물을 차려 놓고 산신제와 무당굿을 펼친 후 신분에 맞는 의상을 갖춘 현감과 이방, 포졸 등이 자리잡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송이찾기가 전개된 후 놀이의 여흥을 살리기 위해 오방기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민행제 의식으로 거행하던 속리산 산신제에 이어 공연하다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지된 송이놀이를 1백여년만에 재연시켜 도내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김영진 외, 1998,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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