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태종무열왕릉비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 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사적 제20호로 미 발굴분이며 구조는 횡혈식의 석실분으로 추정되며 서악동 구릉의 동쪽 경사진 곳에 나란히 배치된 5기의 대형 원분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높이 약13m 주위둘레 약112m이며 자연석으로 된 호석을 둘렀다. 일반적으로 잘 다듬은 돌로 호석을 돌리고 수수인신의 십이지를 배치하거나 석 난간을 돌리는데 비하면 무열왕릉의 봉분에 가해진 장식은 소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능의 전방 동쪽에는 능비가 있으나 현재는 귀부와 이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경주시
자원세부내용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의 능 앞에 세워진 비이다. 이 비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무열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비의 몸인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지금은 비의 대석(臺石)이었던 귀부(龜跌)와 비신 위에 얹혔던 이수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비들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비의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기고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 위로 머릿돌만이 얹혀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머릿돌 좌우에는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 놓았다. 이 여덟 글자는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글씨라고 전한다. 귀부의 길이 380cm 너비 249cm 높이 103cm 이수의 높이는 106cm이다.
자원소유자
국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경주시 2004 <문화재대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994 <경주서악지표보고서>이근직 2006 <신라왕경의 기원과 변환>李浩官 1982「統一新羅時代의 龜趺와 이수」 考古美術
최초모니터링년도
기타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주변 관광지(출처: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