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산 128-5

만경암지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만경암 전투 1909년 7월 7일 점암면 팔영산 만경암에는 의병 125명이 집결해 있었다. 그 중에는 안담산(安擔山)의 부장이었던 신성구와 수비대장 이병태, 그리고 의병북부대장 신기휴 등의 거물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의병들이 만경암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당시의 흥양주재소(현 고흥읍)의 한 순사가 알아냈으며, 이에 흥양의 일본 수비대장 이하 14명과 벌교 수비대장 이하 8명, 보조원 2명 및 주재소원이 총출동하여 성주동을 포위함으로써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의병 4명이 전사했으며, 이어 만경암에서 벌어진 교전에서는 의병 16명이 전사하고 화승총 5정, 군도 1정을 노획당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만경암지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능가사
자원세부내용
팔영산 만경암은 벽오(碧梧)와 그의 제자 형연(炯然) 등이 머물렀던 암자였다. 옛날에는 보현암이라고 불렀으나 능가사를 중창한 벽천이 이 암자도 중수하면서 만경암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현재 만경암은 조선말 항일의병들이 저항하며 싸웠던 전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이곳 만경암을 맹감절터, 맹갱절터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고흥지방에서도 의병들이 팔영산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만경암에 집결한 의병 부대는 일본 토벌대의 기습으로 20명의 희생자가 났는데, 이와 같은 사실이“한말 전남의병전투사”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한말 전남의병전투사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4년동안 일제의 전남 경무과의 의병토벌일지인 전남폭도사를 번역하여 간행한 것이다.
자원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능가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고흥군, 2010,팔영산에 얽힌이야기, 고흥군청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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