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 1
영문주소
350-7 Odaesan-ro, Jinbu-myeon, Pyeongchang-gun, Gangwon-do

오대산 화전터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거름주기를 하지 않고 곡식을 재배하는 가장 원시적인 농법. 약탈농법(略奪農法)의 한 예이다. 처음에는 불태운 초목의 재가 거름이 되므로, 조 ·피 ·메밀 ·기장 ·옥수수 ·콩 ·보리 ·육도 등을 파종하여 그대로 수확을 기다린다. 그 후 일체 거름을 주지 않으므로, 몇 년 후에는 지력(地力)이 상실되어 새로운 지구로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화전을 일구어 농사짓는 사람을 화전민이라 한다. 후진성이 짙은 원시적인 농법이기 때문에 이미 유럽을 비롯하여 선진 농업지역에서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현재도 실시되고 있다. 한국의 화전은 신라 진흥왕(眞興王) 시대의 문헌에 기재되어 있으며, 크게 증가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부터이며, 일제의 식민정책 결과 농촌의 계급분화로 이농자(離農者)가 많아져 화전도 늘어났다. 한국은 구릉지와 구릉성 저산지, 고원성 산지가 많아 그런 곳에서 화전을 많이 일구었다. 화전은 처음 1년 동안은 부덕[火德]이라 하였고, 2년 후부터 화전이라고 하여, 부락 부근의 숙전화(熟田化)한 것은 산전(山田)이라 불렀다. 당초에는 산골짜기의 궁핍한 주민들이 주인 없는 산을 불질러서 밭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국의 화전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18만 정보(町步)였던 것이 39년에는 43만 7930정보로 늘어났다. 남한의 화전면적은 5만 1400정보에 이르기도 하였는데, 8 ·15광복(光復) 이후부터는 화전민의 이주 정착사업을 벌려 안전농가로 육성하는 한편, 20 °이상의 경사지는 산림으로 복구하고 그 이하의 화전은 경지로 취급하기로 하였으므로 점차 정리되어 현재 화전영농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오대산
문화자원명
오대산 화전터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를 잇는 옛길 주변으로 360 여 가구의 화전민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 화전민이란 산에 불을 놓아 나무를 태운 뒤 그곳에다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로 1960년대 말부터 시행한 화전 정리사업과 화전민 이주사업으로 지금은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의 화전 농업은 작물 재배와 더불어 시작되어 매우 오랜 역사가 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화전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식량난으로 다시 증가하였다. 산림 녹화 및 토양 보존의 중요성 때문에 1968년 '화전정리법'이 공포되면서 주로 강원도 산간 지방에 남아 있던 화전민을 다른 지방에 정착시켰고, 화전은 법으로 금지하였다.
자원소유자
월정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화전민 [火田民] (소설 토지 용어.인물사전, 1997.10.20, 솔출판사) [네이버 지식백과] 화전 [land made arable by the slash-and-burn method, 火田] (두산백과) 강원일보 신문, 사진기록(미공개)
최초모니터링년도
2013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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