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명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504
- 영문주소
- 255-153 Namchang-ro, Bukha-myeon, Jangseong-gun, Jeollanam-do
자하 변경윤의 전체 정보
- 관련문화자원내용
- >황창부위(黃昌副尉) 변공(邊公) 묘표 효종 10년인 기해년(1659)에 소현세자(昭顯世子)의 1남 3녀가 모두 작위를 받았다. 아들은 군(君)이 되고 딸은 군주(郡主)가 되고 사위는 모두 부위(副尉)가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이 바로 황창부위이다. 공은 성은 변씨(邊氏)이고 휘는 광보(光輔), 자는 여필(汝弼)이며, 본관은 황주(黃州)이다. 선대에 송나라가 멸망할 때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온 변려(邊呂)라는 분이 고려를 섬겼는데, 공(功)으로 태천백(泰川伯)에 봉해졌다. 시대가 멀어 그 후손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한다. 윤(允)이 서해도 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되어 황주에 살았는데, 자손이 그로 인해 그곳에 살게 되었다. 몇 대를 전하여 석(碩)에 이르는데, 석의 아우가 순(順)이고, 순의 손자 안열(安烈)이 원천백(原川伯)에 봉해져 변씨가 마침내 원주(原州)와 황주로 본관이 나누어졌다. 8대조 정(靜)은 숙부 광수(光秀)를 따라 여러 차례 전공(戰功)을 세웠으나, 고려 말에 광수가 참소를 당해 죄를 받게 되면서 이에 연루되어 장성(長城)에 유배되니, 후손들이 또 장성에 거주하게 되었다. 고조 휘 택(澤)은 좌승지를 지냈다. 증조 휘 이중(以中)은 종부시 정을 지냈고 호는 망암(望菴)인데, 학문을 좋아하고 선행을 즐겨 하여 일찍부터 우계(牛溪 성혼(成渾))와 율곡(栗谷 이이(李珥)) 등 제현(諸賢)의 추중을 받았다. 만년에 오랑캐의 난을 만나 소모사(召募使)와 조도사(調度使) 등의 신분으로 분주히 활약하여 충성과 지성이 성대히 드러나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호남의 사인(士人)들이 추모하여 사당을 세웠다. 조부 휘 경윤(慶胤)은 마지막 관직이 예조 좌랑이었는데, 문학(文學)과 기절(氣節)을 이어받아 일세(一世)의 추중을 받았다. 문경호(文景虎)가 현인(賢人)을 헐뜯고 광해(光海)가 모후(母后)를 폐하자, 전후로 직언하는 상소를 올리고는 장성에 은둔하여 백양산(白羊山) 자하동(紫霞洞)으로 들어가 산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자칭 ‘자하옹(紫霞翁)’이라 하고, 또 호를 ‘치재(恥齋)’라 하였다. 후에 특별히 예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부친 휘 명익(命益)은 금산 군수(錦山郡守)이고, 모친 숙인(淑人) 광주 김씨(光州金氏)는 목사 효성(孝誠)의 따님이다. 공은 인조(仁祖) 22년인 갑신년(1644)에 태어났다. 7세에 문장을 엮을 줄 알았으며 자태가 숙성하였다. 13세 되던 효종(孝宗) 7년 병신년(1656)에 상이 친히 선정하여 소현세자 막내 따님의 배필로 삼고는 이실(貳室 왕의 부마)처럼 돌보아주었다. 이듬해에 예부시(禮部試)에 입격하자 상이 매우 기뻐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모친상을 당하였다. 당시 김 숙인(金淑人)이 금산(錦山)에 계셨는데,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문후하러 달려가던 도중에 부고를 전하러 오는 자를 만나고는 놀라 쓰러져 혼절했다가 한참 지나서야 깨어났다. 거상할 때는 벽용(?踊)하고 미음을 마시며 점괴(?塊)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이듬해가 기해년(1659, 현종 즉위년)이었고, 현종(顯宗) 경자년(1660) 7월에 복제를 마치고 비로소 부위의 명에 사은하니, 상이 인견하여 총애하며 하사한 것이 특히 후하였다. 이해 겨울에 또 부친상을 당해 애훼를 더 심하게 하여 숨만 근근이 쉬면서 곡읍(哭泣)하고, 조석으로 제전(祭奠)을 반드시 몸소 올렸다. 병이 나자 현종이 듣고는 안타깝게 여겨 중관(中官)에게 어선(御膳)을 들려 보내며 죽는 것은 효가 아니라고 효유하게 하니, 공이 감격하여 명을 받들었으나 병이 이미 고질이 되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위독해지자 어의가 약을 가지고 와서 진찰하였으나 결국 신축년(1661) 12월 18일에 졸하니, 나이 겨우 18세였다. 부고가 전해지자 상이 탄식해 마지않았고, 삼전(三殿)이 각기 중사(中使)를 보내 호상(護喪)하게 하고 관곽(棺槨)을 내리고 부의(賻儀)로 거마와 의복을 보내주었다. 임인년(1662, 현종3) 3월 12일에 영평(永平)의 갈현(葛峴)에 안장하였고, 금상 병인년(1686, 숙종12) 3월 6일에 여주(驪州) 상두산(象頭山) 장흥사(長興寺) 북쪽 기슭으로 천장하였다. 넉넉한 예전으로 장례와 제례를 모두 돌보아주었으며, 또 장흥사 및 산록(山麓)의 토전(土田)을 하사하고 무덤을 지키는 노비를 지급해 주었으며, 이해에 또 장렬왕후(莊烈王后)의 수연(壽宴)에 따른 경사로 인해 작질을 한 등급 올려 증직하였으니, 모두 남다른 은수(恩數)였다. 경순군주(慶順郡主)는 소현세자의 셋째 따님으로 인조 21년인 계미년(1643)에 태어났다. 3세에 소현세자가 졸하고 다음 해에 강씨(姜氏)의 옥(獄)이 일어났다. 인조가 근후(勤厚)한 여시(女侍)를 골라 잠저(潛邸) 시절의 옛 궁에 가서 보양(保養)하게 하였고, 효종은 자신의 소생처럼 어루만지고 사랑해 주었다. 14세에 하가(下嫁)하여 4년 만에 군주에 봉해졌으며, 또 3년 만에 공이 별세하였다. 금상 23년인 정축년(1697) 12월 18일에 낙선방(樂善坊)의 집에서 졸하니, 예는 부위의 상과 마찬가지였지만 은수는 더 후중하였다. 이듬해인 무인년(1698) 2월 9일에 상두산 남쪽 기슭 유좌(酉坐) 언덕에 합장하였으니, 이는 또 전의 무덤이 길지(吉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향년 55세로 후사를 두지 못하였다. 공이 임종 시에 반드시 형제의 아들을 후사로 데려오도록 유언하였는데, 얼마 뒤 형 광재(光載)는 외아들 일(佾)을 두었고 아우 광식(光軾)은 역시 아들이 없이 죽었다. 경순군주가 공의 뜻을 어기고 싶지 않아 일의 둘째 아들 치은(致殷)을 데려와 품에 안고 양육하여 장차 후사로 삼으려 하였는데, 광재가 반대 의견을 고집하면서 손자로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 것은 소목(昭穆)이 중도에 끊기는 것이란 이유로 족질(族姪)을 후사로 세우도록 조정에 청하였고 경순군주도 사연을 진달하였다. 상이 그런 사정을 가엾게 여겨 대신에게 묻자 대신도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치은에게 그 숙조(叔祖)의 제사를 주관하도록 명하였으니, 실로 특별한 은수였다. 공은 천품이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기품이 고상하였다. 효우(孝友)에 독실하여 결국 애훼하다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였다. 경순군주는 겸손하고 검소하며 시부모를 섬김에 예를 다하였고 공의 형제자매를 정성으로 대하였다. 공이 졸한 뒤 소박하게 지내며, 일생을 마치도록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 이 어찌 후세에 전해야 할 훌륭한 배우자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유독 후한 복을 받고도 그 보응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어째서란 말인가. 슬프다.
- 관리주체
- 기타
- 국립공원
- 내장산
- 문화자원명
- 자하 변경윤
- 보존상태
- 보존상태 양호
- 상세수량
- 1
- 자원관리자
- 없음
- 자원세부내용
- 자하 변경윤(紫霞 : 邊慶胤 1574~1623은 1574년, 이곳 장성에서 망암 변이중과 오씨 사이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호는 자하이며 본관은 황주로 천성이 아버지를 닮아 인품이 정중하며,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선생은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한 번 읽고 이해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놀라움을 사곤 하였는데, 나이 스무 살 무렵에는 술 마시고 시를 짓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풍류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이를 눈치 챈 어버지가 선생을 불러다가 매우 꾸짖었는데, 그 후 아버지의 말씀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고 학문에 열중할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며, 성흔, 김장생 등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글을 배우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광해군(1575~1641) 시절에 구언령(求言令)을 내리자, 선생은 교서관의 저작이란 말직으로서 당시 국정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고하면서, 특히 집권대신들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온 이후에는 지금의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자하동에 은거하여 평생을 성리학설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조정에서 관직에 다시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까지 거절하였고 한다.
- 자원소유자
- 없음
- 자원수량
- 1
- 자원입지
- 기타
- 지번주소
- 참고문헌
-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2007 >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장성군 1989 > 북하면편 장성군
- 최초모니터링년도
- 2012
-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 예
상세 시스템 데이터 보기
- 경도
- 126.8377
- 위도
- 35.4555
주변 목록 (8)
주변 국립공원공단_경관자원 (12) 이동하기
몽계폭포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자하 변경윤'에서 1.32km
장성새재
전북 정읍시 신정동 산185
'자하 변경윤'에서 2.86km
순창새재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산99-1
'자하 변경윤'에서 3.28km
입암계곡
전북 정읍시 신정동 산183
'자하 변경윤'에서 3.53km
소둥근재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산99-1
'자하 변경윤'에서 3.66km
갓바위 조망(정읍평야)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자하 변경윤'에서 3.80km
백양골전경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자하 변경윤'에서 4.11km
삼성산
전북 정읍시 신정동 산172
'자하 변경윤'에서 4.22km
구암사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374
'자하 변경윤'에서 4.38km
쌍계루와 백학봉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자하 변경윤'에서 4.58km
갈참나무와 단풍터널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자하 변경윤'에서 4.77km
내장산전경
전북 정읍시 내장동
'자하 변경윤'에서 5.29km
주변 한국관광공사_열린관광지목록 (12) 이동하기
순창 강천산군립공원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97
'자하 변경윤'에서 21.47km
고창 선운산 도립공원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158-6
'자하 변경윤'에서 23.34km
부안 모항해수욕장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모항길 22
'자하 변경윤'에서 33.05km
임실 옥정호외얏날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458
'자하 변경윤'에서 34.60km
순창 향가오토캠핑장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향가로 575
'자하 변경윤'에서 34.63km
임실 치즈테마파크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도인2길 50
'자하 변경윤'에서 46.23km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
'자하 변경윤'에서 47.02km
전주 남부시장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1길 19-3
'자하 변경윤'에서 48.60km
전주 경기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자하 변경윤'에서 48.91km
전주 오목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자하 변경윤'에서 49.12km
전주향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교동)
'자하 변경윤'에서 49.13km
전주 한옥마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99 (남노송동)
'자하 변경윤'에서 49.41km
주변 한국관광공사_비대면 안심관광지 목록 (12) 이동하기
축령산 편백숲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추암로 716
'자하 변경윤'에서 13.62km
광주호 호수생태원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자하 변경윤'에서 33.57km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편백길 191-24
'자하 변경윤'에서 45.50km
함평자연생태공원
전남 함평군 대동면 학동로 1398-77
'자하 변경윤'에서 46.70km
섬진강 침실습지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3길 5
'자하 변경윤'에서 47.96km
나주향교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38
'자하 변경윤'에서 48.25km
3917마중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42-16
'자하 변경윤'에서 48.31km
나주목사내아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3-8
'자하 변경윤'에서 48.39km
나주읍성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 2-20
'자하 변경윤'에서 48.54km
옥돌해수욕장 & 구불길 8코스
전라북도 군산시 선유도리(선유1구)
'자하 변경윤'에서 54.98km
방축도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방축도1길 13-1
'자하 변경윤'에서 60.63km
뜬봉샘 생태관광공원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산39-3
'자하 변경윤'에서 61.97km
주변 한국관광공사 전국 야영장 등록 현황 (12) 이동하기
이밤에캠핑장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구마석길 79-20
'자하 변경윤'에서 9.60km
그라제(GRAZE)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로 342-22
'자하 변경윤'에서 11.96km
담양오랑쥬마을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메타세쿼이아로 146
'자하 변경윤'에서 21.47km
숲속의 관광농원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평림암치로 141-1
'자하 변경윤'에서 24.16km
풍경소리캠핑장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산호수길 208-30
'자하 변경윤'에서 24.25km
경이궁 캠핑카라반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용매골길 46
'자하 변경윤'에서 25.90km
낭만글램핑(투지지앤씨)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철길로 106-4 (운남동)
'자하 변경윤'에서 32.06km
청산별곡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수장2길 38-4
'자하 변경윤'에서 38.99km
청계동 솔바람야영장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신기리 산159-1
'자하 변경윤'에서 41.97km
전주 아중호수 캠핑장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왜망실길 100 (우아동1가)
'자하 변경윤'에서 51.32km
청암산오토캠핑장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산면 대위로 50
'자하 변경윤'에서 54.09km
성수산 왕의숲 국민여가캠핑장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374
'자하 변경윤'에서 55.19km
주변 통일부_DMZ인근 지역 관광 정보 데이터 (12) 이동하기
경인아라뱃길유람선 현대크루즈호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아라육로270번길 74
'자하 변경윤'에서 238.24km
아라김포여객터미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아라육로270번길 74
'자하 변경윤'에서 238.24km
뱃길조각공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자하 변경윤'에서 238.67km
동검선착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65번길 91-9
'자하 변경윤'에서 238.71km
동검도(나들길,캠핑,예술극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63번길 60
'자하 변경윤'에서 239.20km
금정사(김포)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125
'자하 변경윤'에서 239.56km
강화해수랜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13-12
'자하 변경윤'에서 239.88km
김포 장릉(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9
'자하 변경윤'에서 239.91km
강화 동막해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481
'자하 변경윤'에서 240.06km
대포서원(김포)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황금로23번길 30-32
'자하 변경윤'에서 240.70km
김포향교
경기도 김포시 북변중로25번길 38
'자하 변경윤'에서 241.47km
북변동 올드타운
경기도 김포시 북변중로65번길
'자하 변경윤'에서 241.6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