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산 1-1

변경윤 묘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자하 변경윤(紫霞 : 邊慶胤 1574~1623) 변경윤 선생은 1574년, 이 곳 장성에서 망암 변이중과 오씨 사이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호는 자하이며 본관은 황주로 천성이 아버지를 닮아 인품이 정중하며,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선생은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한 번 읽고 이해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놀라움을 사곤 하였는데, 나이 스무 살 무렵에는 술 마시고 시를 짓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풍류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이를 눈치 챈 어버지가 선생을 불러다가 매우 꾸짖었는데, 그 후 아버지의 말씀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고 학문에 열중할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며, 성흔, 김장생 등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글을 배우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광해군(1575~1641) 시절에 구언령(求言令)을 내리자, 선생은 교서관의 저작이란 말직으로서 당시 국정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고하면서, 특히 집권대신들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온 이후에는 지금의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자하동에 은거하여 평생을 성리학설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조정에서 관직에 다시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까지 거절하였고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내장산
문화자원명
변경윤 묘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황주변씨 종친회
자원세부내용
자하동 마을 진입로 옆 향로봉 능선에는 변경윤의 묘가 있다. 조선시대 자하동에 은거하였던 자하 변경윤(1574~1623) 선생의 무덤인데, 조선시대 사대부 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망주석과 상석이 남아 있고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꾸몄다. 비석은 1968년 다시 세운 것으로 원래의 비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변경윤은 장성에서 망암 변이중과 오씨 사이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호는 자하이며 본관은 황주로 천성이 아버지를 닮아 인품이 정중하며,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성흔, 김장생 등 당대 유명한 학자들에게 글을 배우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광해군(1575~1641)대에 구언령(求言令)을 내리자, 선생은 교서관의 저작이란 말직으로서 당시 국정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고하면서, 특히 집권대신들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귀향한 이후에는 지금의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자하동에 은거하여 평생을 성리학설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조정에서 관직에 다시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까지 거절하였고 한다.
자원소유자
황주변씨 종친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2007 >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2009 >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장성군 1989 > 북하면편 장성군
최초모니터링년도
2012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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