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산 50-1
영문주소
173 Hyangjeoksan-gil, Eomsa-myeon, Gyeryong-si, Chungcheongnam-do

국사봉 전설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가 있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다.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봉우리 주변에 금 한 잎을 묻었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다. 국사는 나무꾼에게, "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에 의해 국사봉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파헤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을 개설하고 많은 금을 캐갔다고 한다. '국사봉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임금이 준 금화, 땅에 심은 금화와 그 성장, 국사가 머물던 장소로서의 국사봉 등이다. 성장한 금화가 금광이 되고 이것을 일본인이 캐갔다고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철저한 경제적 수탈이라는 역사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출처: 공주의 전통마을)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계룡산
문화자원명
국사봉 전설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국사봉 전설(國師峰 傳說)에 담긴 뜻은 일제강점기에 철저한 경제적 수탈을 당한 역사적 상황을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받은 금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서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590.6m]이라고 불렀으며, 성장한 금화가 금광이 되고 이것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금광을 개발해 금을 캐갔다는 사실을 빗댄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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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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