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1-2

신비의 도읍지 신도안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충남의 靈山이라 불리우는 계룡산 남쪽 기슭에 분지의 벌판을 이루고 있는 곳이 두마면 신도안(또는 신도내)이다. 이곳 신도안은 새도읍지라는 신비의 꿈을 간직한 채 뭇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傳說속에 지금도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태조는 등극한 후 명실 공히 새로운 출발을 결단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기가 이어질 새로운 도읍지를 찾기 위하여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태조 2년 2월 새도읍지를 찾아다니던 권중화는 충청도 계룡산 신도내의 형세를 왕에게 바치면서 “이곳이야 말로 새로운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에 손색이 없는 곳인 줄 아옵니다.”하며 아뢰었다. 이태조는 손수 나라 안의 이름 있다 하는 풍수지리가들을 이끌고 이곳까지 답사하여 새도읍지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신왕도로 지정된 이곳에 신도감영(監營)을 설치하고 도읍지의 기초공사가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인부들로 신도안은 법석대기 시작했고, 동문거리, 남문거리, 종로거리 등이 계획되어 공사가 진척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태조 2년 10월에 이르러 河崙이란 사람이 이태조에게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위치해야 하는데 계룡산은 동남으로 너무 치우쳐서 서북과 거리가 멀므로 큰 나라의 도읍지로서는 절대 적당한 곳이 못되옵니다.”라는 상소문을 올리었다. 이후부터 이태조는 신도읍지에 관한 많은 의혹을 안은 채 고심하던 중 어느 날 신원사(新元寺)에 들렀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의 별들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곧 중들을 모아 연유를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날 밤 이태조의 꿈에 한 神人이 나타나서 “신도는 鄭氏의 도읍이지 당신의 터가 아니요.” 하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리하여 이태조는 천도의 꿈을 완전 백지화하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남아있는 주춧돌만이 옛 歷史를 말해주기나 하는 듯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곳은 풍수지리로 볼 때 十勝地라 해서 병화를 면할 수 있는 피난지라 하였고 각지로부터 모여든 무지자들의 집합소가 되어 허황된 장래를 꿈꾸며 몽상에 사로잡힌 신흥 유사종교도들의 온상지가 되기도 하였다. [출처] 충청남도, 1994, >, 한밭공론사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계룡산
문화자원명
신비의 도읍지 신도안
보존상태
보존처리 확인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해당없음
자원세부내용
조선 건국 초기 천도 후보지로 1년여간 궁궐공사를 실시하였던 계룡산 남쪽 신도안에 관한 이야기로서 풍수지리설의 중심이 되는 신도안의 신령스러움과 정감록과 관련된 진인(眞人)에의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설화는 조선을 창건한 태조가 공주 계룡산을 답사하고 이 곳에 新都를 정하기로 하고 工役을 시작했으나, 國都로 부적당하다는 異說이 나와 1년 만에 공사를 멈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신도안 일대의 도참 풍수설에 의한 정감록 秘訣思想이 깃들어 있다. 당시 궁궐 건축에 사용하기 위해 일부 다듬어 놓은 주초석들은 신도안의 석계리, 장장리, 부남리 등 일대에 흩어져 남아있는데 이들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忠淸南道, 1994, >, 한밭공론사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0, >, 백제문화개발연구원 계룡시청 홈페이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4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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