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7

기림사응진전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르한(arhan)에서 음역된 말이다. 뜻으로는 응공 응진이다.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자’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치게 하는 자’ 즉 성자를 가리켜 아라한이라고 한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신을 가리켜 아라한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런 존칭은 불교에서만이 아니고 인도의 다른 종교에서도 성자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불교와 같은 시대에 창시된 자이나교에서는 이 호칭이 후대에까지 사용되어 왔다. 불교에서는 당초에는 깨달은 사람 종교적인 이상을 실현한 사람을 아라한이라 불렀지만 후세에 이르면서 개인적인 깨달음에 만족한 소승적인 수행자로 잡는 경향이 생기게 됐다. 자신의 깨달음을 뒤로 미룬 채 타인의 구제에 헌신하는 보살사상에서 형성된 것임은 물론이다.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그의 설법을 결집하기 위해 상수제자인 마하가섭이 회의를 소집했다. 이 때 모인 오백명의 비구는 모두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제자들이었다고 한다. 이 모임을 제일결집 혹은 오백결집이라고 부른다. 또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는 오백명의 아라한이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으며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오백명의 비구와 함께 계셨다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의 나한전에는 주불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그 좌우로는 가섭과 아란 두 제자를 비롯하여 16나한을 모시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기림사 대적광전 남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오백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다시 중건하였으며 2002년 개원 불사를 하는 중에 오백 나한 복장에서 조성 당시 발원문 이 나왔는데 나한상은 옹정7년(1729)에 조성 되었는데 금산사 스님4명과 기림사스님 3명이 조각에 참여 하였다고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경주
문화자원명
기림사응진전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기림사
자원세부내용
기림사는 선덕여왕 12년(643)에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세웠으며 이름은 부처님이 살아있을 때에 세웠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한다. 응진전은 기림사에 있는 건물로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조선 후기(18세기 이후)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전각(殿閣)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이루는 맞배지붕이며 다포식(多包式)의 건물로 과장되지 않은 단정한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자원소유자
기림사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장충식 1991 「기림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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