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 1012
영문주소
139 Dongdo-ro, Samsan-myeon, Yeosu-si, Jeollanam-do

귤은사당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연혁 - 한말의 유학자인 金瀏를 배향한 사당으로 1904년(광무8) 제자 朴圭錫 등이 세웠다. 김류(1814-1884)는 본관이 경주, 자가 士亮, 호가 橘隱`白眉居士로 巨文島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에게 수학하여 성리학에 밝았으며 인근 西島里의 金陽록과 함께 거문도를 유학으로 교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청의 수군제독 丁汝昌이 거문도에 왔을 때 그의 제자들과 筆談한 뒤 이 섬의 학문 수준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西勢東漸이 본격화하여 조선 근해에 異樣船이 자주 출몰할 무렵인 1854년(철종5) 4월 러시아의 푸차친(Putiatin)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함대의 거문도 기항사건을 직접 목도하고 그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서술한 -海上奇聞-은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청산도에도 김류를 배향한 崇募祠가 있다. 유적현황 - 유촌마을 옆 동도초등학교 뒷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지 10여 평에 사당은 건평 4평의 시멘트 기와집이고 낮은 담장으로 둘려 싸여 있다. 橘隱堂이라는 현판은 寄正鎭의 후손인 奇宇蒙이 썼고, 堂記는 당시 判郭寧院事原任奎章閣 學士陸軍副將이었던 李址鎔 및 乙未倡義將이었던 奇宇萬 등이 썼는데 거의 판독할 수가 없다. 이지용은 1904년 日本報聘使로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으로 이 유촌에서 머문 연고가 있었다. 근처 유촌리에는 김류 및 그의 제자 박규석의 강학소인 樂英齎가 있다. * 경주김씨로, 자(字)는 사량(士亮)이요, 호(號)는 귤은(橘隱)이다. 현재의 여수시 삼사면 거문도 출신으로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어 장성의 거유 노사 기정진 문하에서 수제자로 만학했던 석학으로서 30대에 귀향하였다. 1843년경 청국 함선이 삼도에 입항하였지만 언어상통이 안 되어 결국에는 문자로써 문답하였는데 귤은 선생의 높은 필담실력에 경탄한 청국 함장은 “이 섬 이름을 거문도(巨文島;큰 학자가 있는 섬)라 하는 것이 적절 하겠습니다.”라고 격찬한 바 그 후부터 거문도라 되었다 한다. 1844년 선생이 36세 때 불운의 상처에 겹친 가정 내 불행을 극도로 비관한 끝에 여서도로 이거하여 주민들에게 문자를 비롯, 예절 등을 가르쳤다. 이 때 청산면 청계리의 유력자인 지문여씨가 김류 선생의 명성을 일찍 아는지라 여서도에서 김류 선생을 청계리로 모셔왔다. 지문여씨는 김류 선생의 건강회복에 극진 예접하며 사숙을 정결히 신설하여 우선 지씨 근족의 자질위주로 교학을 개시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전 청산도에 알려져 매일 부급자영문으로 찾아 들어서 사숙을 확장 증설하여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또 사숙을 각리로 확산하되 문하생 중에서 실력 있는 분들은 각리사숙의 훈장으로 진출시켜 교훈하니 청산도내에 문맹남자가 거의 없게 되어 웬만한 남자치고 한시 한 두 수쯤은 의례 읊었으니 그래서 ‘청산 가서는 글 자랑 말라’는 말이 생겼다. 귤은 김류 선생은 40년간을 청산에서 생활하면서도 무사되고 무남독녀뿐이었다. 선생이 1884년 4월 20일 향년 76세로 청계리에서 서거하자 문하생들이 성대한 장례로써 선생의 고향인 여천군 삼산면 귤동 양좌원에 운구, 안장하였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귤은사당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여수시
자원세부내용
귤은사당은 조선후기 향리에 낙영제를 세우고 후학에 힘쓴 당대의 큰 선비인 귤은 김류(金瀏)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제자인 박규선(朴圭錫 1885~1923) 등이 1904년에 세운 사당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 유촌마을 거문초등학교 동도분교장 뒤편에 있는 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주정자형(四柱亭子型) 기와집 형태이다. 귤은당(橘殷堂)이라는 현판은 노사(盧沙) 기정진의 후손인 기우몽(寄宇蒙)이 썼고, 당기(堂記)는 1904년 일본 사신으로 가다 풍랑을 만나 잠시 거문도에 머문 당시 무인이었던 완산 이지용(李址鎔)과 기우만 등이 지은 것을 새겨 걸었다. 귤은 김류(1814~1884) 선생은 거문도 출신의 근세유학자로서 기정진(奇正鎭, 1798~1879)에게 수학하여 성리학에 밝았으며 거문도와 청산도 등의 절해 고도지방에서 강학 등으로 종신하였고 인근 서도리의 만회 김양록과 함께 거문도를 유학으로 교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1854년 4월, 러시아 함대의 거문도 기항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그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해상기문(海上奇聞)’과 같은 중요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자원소유자
유촌마을 이장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여수시, 1998, 삼산면지, 삼산면지편찬위원회 여수시, 2000, 여수시의 문화유적, 여수시, 조선대학교박물관 여수시, 2001, 여수시 문화재도록,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수시, 2008, 여수의 향기 아름다움이 여기에, 여수시여수지역사회연구소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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