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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 95-3

창유리 비석거리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 도감임공세춘영세불망비(都監林公世春永世不忘碑) 임도감은 동거차 출신(현재에도 동거차에 선산이 있음)으로 풍채 좋고 눈빛이 번쩍번쩍 빛나 개나 강아지도 그의 앞을 못 지나갈 정도의 인품으로 전해온다. 살던 곳은 개 건너 창유리 1337전(대밭 앞)에 기와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있다. 출생년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분의 전설은 제주목장에서 배에 말 수 십 마리를 실고 서울로 가던 도중 현 읍구(작은 육굴 배씨 밭이라고도 함. 육동 김이호씨 증언)에 정박하고, 말을 상륙시키고 농작물을 함부로 먹이는 작폐를 부렸다. 이러한 작폐는 제주와 해남 중간 지점에 위치한 조도에는 연중 행사처럼 있었던 일로 직강 혹은 풍원 정도의 조도면 지방의 책임자로는 해결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던 현실이었다. 이에 ① 임세춘씨가 하루 도감이 되어 현지에 이르러 잘못을 꾸짖으니 그의 안광에 놀라 변상 조치하고 떠나 갔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② 혹은 전하기를 말의 낙인을 확인하여 국마와 사유 말을 구별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례가 없도록 조치했다 한다.(한낙현 1895~1980의 증언) ③ 임도감이 나주목사를 자주 찾았던 모양이다. 임도감이 원님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지 않았던지 목사가 “꼬리가 길어서 문을 못 닫느냐”고 하자 임도감이 “마구간이 좁아서 못 닫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원님은 임도감을 짐승에 비교했고 임도감도 원님을 마굿간에 있는 짐승에 견준 것으로 상하의 구별이 없이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④ 임도감의 기를 꺾기 위하여 그의 선친 동거차도 무덤에 철창을 박았는데 들어가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이는 임도감 조상의 묘가 명당이었다는 것으로 임도감이 육지 양반들과 간혹 대립이 있었다는 것이다. 장수웅(현 창리 장청운 형이고 할머니가 林氏임)말에 의하면 돌아가신 곳과 무덤이 없는 것으로 봐서 비명에 가지 않았나 추측이다. 슬하에 아들은 없고 딸 하나 있었는데 신안군 어디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이 비는 1854년에 창유리 530번지(조도초등학교 앞 구 신사 터 밑)에 세웠던 것을 1960년 면사무소 정원으로 옮겼고 또다시 1990년 어류포 잔등 산 101-1로 옮겨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조도환개통기념비(鳥島丸開通紀念碑) 1926년 창유리 2826번지에 세웠다가 1990년대에 창유리 산 101-1번지 어류포 잔등큰길가로 옮겼다. 1926년 11월 6일, 조도환 진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로써 전남도지사, 진도군수남정학(南庭學), 조도면서기 한낙현(韓樂現)이 유공자이다. 또한 기부자로써 일본인 약협곡재(若峽谷齋)_2,500엔, 진도운수회사_2,500엔, 김용주_300엔, 후등신오_200엔, 박의배_100엔, 윤양섭_100엔, 삼호완길_60엔, 송관현_50엔이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창유리 비석거리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9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조선후기 이래 창유리를 중심으로 몇 기의 비석이 있다. 1990년대 창유리에 흩어져 있던 이들 비를 어류포 선창에서 창리로 넘어오는 고갯길 가인 창유리 산101-1번지에 9기를 모아두었고 초등학교 교정에 1기를 두었다. 또한 맹성리에 강씨집안 비석 2기, 율목에 동네유공자 비석 2기가 있다. 창유리 비석 중 주목할 만한 비는 전설적인 조도출신 인물 임세춘 도감의 불망비와 조도환 취항기념비이다.
자원소유자
조도면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진도 조도면지(진도문화원 발행)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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