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 35-17
영문주소
54 Jeokbyeokgang-gil, Byeonsan-myeon, Buan-gun, Jeonbuk-do

죽막동 제사유적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적벽강 당골(여울골) 절벽 위에 있는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수성당은 女海神 개양할미를 모신 곳이다. 개양할미는 서해를 관장하는 聖人으로 여겨 水聖을 모신 堂집이라고 부른게 아닌가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려 어부들이나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죽막동제사유적은 바로 이곳 수성당 옆에 있다. 전설1 - 개양할미는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이다. 아득한 옛날 적벽강의 대막골 뒤 ‘여울굴’에서 개양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과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풍어를 관장하여 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개양할미를 물의 성인으로 높여 수성할미라 부르고 여울골 위 칠산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절벽에 구랑사를 짓고 모셔왔는데 이는 개양할미가 딸 여덟을 낳아 위도 영광 고창 띠목 등 칠산바다 요소에 보내 바다를 지키게 하고 개양할미는 막내딸을 데리고 구랑사에 머물며 서해바다를 총괄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성당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그런 개양할는 키가 어찌나 크던지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다녀도 버선도 젖지 않았다 하며 다만 곰소의 ‘계란여’에 이르러 발이 빠져 치마까지 젖었는데 화가 난 개양할미가 치마에 돌을 담아다 계란여를 메웠다고 한다. 지금도 깊은 물을 보면 ‘곰소 둠벙 속 같다’는 속담이 전해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죽막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 마을 어민들이 무사태평과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맥이 끊긴 상태다. 전설2 - 먼 옛날 이 대막골(죽막동)에 마음씨 착한 고기잡이 형제가 앞을 못 보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형은 날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아우는 산에 나가 밭도 일구고 어느 날 형이 고기를 많이 잡는 꿈을 꾸어 오늘은 많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많은 고기를 잡아가지고 돌아와야 할 형이 이날따라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어머니와 동생의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바닷가에서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동생이 형을 찾으러 바다로 나갔는데 이제는 동생마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홀로 남은 앞 못 보는 어머니는 형제를 찾으러 더듬더듬 나간 곳이 수성당 옆의 대마골(여울굴) 절벽이었다. 어머니는 바다를 향하여 소리 높여 두 아들을 불렀다. 그러자 그 소리가 깊은 여울굴에 메아리져 돌아오는 소리가 두 아들의 대답하는 소리로 들린 것이다. 아들의 대답소리로 잘못 들은 어머니는 너무도 반가워 계속 부르며 한발 한발 떼어 놓다 절벽 밑 여울굴 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 청명한 날 하얀 돛단배 한 척이 순풍에 미끄러지듯 대막골 해변에 닿았다. 화려한 그 배에는 잘 생긴 두 청년이 아리따운 두 아가씨와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은 고기잡이 형제였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여울굴의 절벽 위에 섰다. 이윽고 여울굴 밑 푸른 물이 점점 차오르더니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물속으로부터 나와 두 청년 앞에 서니 형제는 극진한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들을 보고 "수고 많았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황금부채 한 개씩을 줄 것이니 한 개로는 나라를 구하고 또 한 개로는 마을을 구하여라. 그리고 너회 모친은 잘 모시고 있을 것이니 그리 알거라" 이르고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네 사람의 남녀는 노인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재배하고 난 후 형이 가진 황금부채로 바다를 향하여 부쳐 보았더니 갑자기 큰 바람이 일며 성난 파도가 바다를 뒤집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가진 부채로 부치니 이번엔 그 거센 풍파가 바로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노인의 큰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여울굴 옆에 수성당을 짓고 받들어 모셨다고 한다. 그러자 여울굴 속에서 철마(鐵馬) 한 마리가 나왔는데 이 철마는 두 형제만이 탈 수 있으며 평상시에는 작았다가 형제가 타기만 하면 큰 말이 되어 왜구가 침입하면 형이 타고 비호같이 달려가 황금부채로 적의 배를 모조리 침몰시켰으며 동생은 바다에 나간 마을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게 되면 역시 부채로 부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변산반도
문화자원명
죽막동 제사유적
보존상태
보존처리 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부안군
자원세부내용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제사유적으로서 불과 8×13m의 좁은 발굴지에서 1,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을 받았다. 1992년 국립전주박물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선사시대 이래 바다 혹은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왔고, 삼국∼조선시대의 중국청자, 항아리, 받침대, 잔, 병 등의 토기류와 금속유물(청동 철제), 석제모조품 등 다양한 제사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수성당과 인근의 이 제사유적지가 있는 죽막동은 선사시대부터 중국이나 북방의 문화가 한반도 남부로 전파되던 해로상의 중요지점이다. 항해술이 발달되지 못했을 때에 배들은 연안을 따라 섬이나 육지의 주요 지점을 기점으로 항해했을 것이고, 사자가 바다로 뛰어드는 듯한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을 항해상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았을 것이다. 또한 조류가 심하고 복잡하며 바람도 강해서 예로부터 조난의 위험이 컸기에 이곳에서 해신에게 풍어와 항해상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죽막동 제사유적지는 수성당과 적벽강을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파랑의 영향으로 조성된 해식애(절벽)와 파식대가 있는 적벽강과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곶(헤드랜드)에 수성당과 죽막동 제사유적지가 있다. 채석강에서 이곳을 보면 평평한 구릉인 해안단구가 바다로 돌출되어 있는 모습으로 어부나 선원들이 참고해야할 포인트임을 알 수 있다.
자원소유자
부안군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 참고문헌 -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 국립공원관리공단 - 국립공원연구원, 2009, 변산반도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국립공원관리공단 - 원광대학교 박물관(부안군), 2004, 부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부안군 - 국립전주박물관, 1999, 부안해안일대유적지표조사 ○ 참고사이트 - 부안21(http://www.buan21.com) - 국립전주박물관(http://jeonju.museum.go.kr)
최초모니터링년도
2011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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