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203

진도 남도진성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배중손(裵仲孫) 장군이 진도에 와서 용장산성에서 패하고 마지막 까지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며 최후를 맞이한 성입니다. 용장산성에서 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져 임금을 모시고 서쪽으로 가던 배중손의 군사들은 추격해 온 몽고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해 진도 남도진성으로 왔습니다. 이때 임금 승화후와 아들 왕환(王桓)은 몽고군에게 생포됐는데 목숨만 구해줄 것을 애걸복걸했으나 몽고군은 들은 척도 않고 칼을 빼어 무참히 참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한편 김통정이 거느린 군사들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퇴각하였고 그 뒤를 따르던 부녀자들과 시종들은 도망칠 기력을 잃은데다 살아 남아 오랑캐에게 짓밟힐 바엔 죽음을 택하자며 우향천 깊은 수렁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그곳이 오늘날 '여기급창(女妓及唱)'이라고 불리는 곳이고 지금도 비 오는 밤만 되면 원한 서린 울음소리가 듣는 이의 애간장을 아리게 한다고 합니다.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남도석성은 동쪽에 있는 금갑보(金甲堡)와 더불어 오른쪽으로 가는 바닷길의 요지이며 동시에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올라오는 목줄기에 해당되는 요새지였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진도 남도진성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진도군
자원세부내용
진도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이래 주민들의 거주지로서 외부의 적을 막고자 성을 쌓고 방비하던 의미있는 유적이다. 고려시대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 갈 때 출발지로 알려지고 있으며 고려후기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조선 초기까지 성을 비워두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38년(조선 세종 20)에 이곳에 만호부를 두고 성을 재건하여 왜구를 방비하기에 이른다. 당시 쌓은 성이 오늘날 진도 남도진성이며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다. 둘레는 400여m 정도이나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요지에 구축된 국방유적으로서 가치가 크다.
자원소유자
국공사유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다큐멘데크 문화재청 홈페이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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