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오리 87
영문주소
26-3 Ori-gil, Heuksan-myeon, Sinan-gun, Jeollanam-do

신안 수리 김이수 생가터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조선왕조실록』의 1791년(정조15) 5월 22일 기사에는 "흑산도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기록에서 지칭하는 "흑산도의 백성"이 바로 '김이수'이다. '김이수'의 활동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1791년 정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고 '격쟁'을 올린 일이다. '격쟁'은 임금의 행차 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시선을 집중시킨 후 직접 백성들의 민원을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는 당시 흑산도민들이 겪고 있던 가장 큰 폐단인 '닥나무 세금'을 시정하기 위해 관청이나 상부에 소송을 내고 수 차례 시정을 요청했으나 효괄르 거두지 못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천리만길 한양까지 찾아가 임금에게 직접 개혁을 호소하였다. 김이수가 한양으로 '격쟁'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듣기가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김이수의 격쟁은 '민중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현군이었던 정조 임금에게 받아들여져 이에 대한 폐단이 시정되었다. 김이수는 1767년부터 약 40여 년의 세월동안 섬 주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당시의 여러 폐단을 시정코자 노력했으며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내기도 하였다. 단순히 폐단의 금지를 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시정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김이수가 개혁운동에 대한 실천가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된 자료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김이수와 관련된 유적으로 흑산도에 남아 있는 묘와 대둔도의 생가가 있다. 신안군의 역사인물이 대부분 유배 왔던 사람들임에 반해 김이수는 섬에서 태아나고 줄곧 생활했던 토박이 역사인물로서 더욱 가치가 높다. '김이수'의 활동약력 중 특이한 점은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를 간행하는 선원록청으로부터 서사랑청이라는 직책을 임명 받았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묘비명에서도 확인되는데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활을 수행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신안 수리 김이수 생가터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하나 지속적 점검필요
상세수량
1
자원관리자
없음
자원세부내용
김이수는 조선후기 민권운동가로 정조대에 흑산도 주민에 대한 차별적 세제(稅制) 개선(닥나무 세금의 폐단)을 요구하는 격쟁(擊錚, 조선시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왕의 행차 앞에서 징이나 꽹가리를 쳐서 호소하는 일)을 벌여 성사시킨 인물이다. 김이수 생가터는 일반인으로서 개혁사상과 실천정신을 보여준 그의 굳건한 의지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자원소유자
없음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국립공원관리공단 2009 > 다큐멘데크 신안군 신안문화원 2008 > 두김디자인 신안군 신안문화원 2009 > 신안군 KBS1 TV 역사추적 홈페이지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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