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602
영문주소
43-2 Buyong-gil, Bogil-myeon, Wando-gun, Jeollanam-do

보길도윤선도원림의 전체 정보

관련문화자원내용
(특징)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있는 윤선도 관련유적. 사적 제368호. 지정면적 83,532㎡.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32㎞, 해남반도의 남단에서는 12km 떨어진 외딴섬이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격자봉(格紫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북 방향으로 아름다운 계류가 흐르고 있는데,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이 일대에 정사(亭舍)와 연못을 축조하여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였다. 1637년(인조 15) 2월 윤선도가 51세 때 처음으로 보길도를 찾아 입구에 세연정(洗然亭)과 연못을 축조하였는데, 물과 바위와 대(臺)와 소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한 조원(造園)공간으로 지금까지 부용동원림 중에서도 가장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세연정에서 부용리 쪽으로 약 1.5 km쯤 들어가면 낙서재(樂書齋) 건너편 산비탈에 동천석실(洞天石室)이 있다. 이곳은 1,000여평의 공간으로 석문(石門)·석담(石潭)·석천(石泉)·석폭(石瀑)·석대(石臺)·희황교(羲皇橋)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석문 안의 두어칸 되는 반석(盤石)에는 다도(茶道)를 즐기던 흔적이 있고 그 주위로는 건물터가 있다.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하였다. 동천석실에서 남쪽으로 약간 내려오면 부용리에 인접한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 일대에 낙서재와 무민당(無悶堂)·곡수당(曲水堂)을 짓고 세상의 명리를 떠나 꾸밈없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 밖에도 윤선도는 주변의 자연경관에 따라 각각 그 이름을 붙였는데, 낭음계(朗吟溪)·승룡대(升龍臺)·하한대(夏寒臺)·혁희대(赫羲臺)·독등대(獨登臺)·상춘대(賞春臺)·언선대(偃仙臺)·오운대(五雲臺)·조산(造山)·미산(薇山)·석전(石田) 등이 그것이다. 윤선도는 1637년부터 85세로 죽을 때까지 일곱 차례나 보길도에 왔다갔다 하면서 13년 동안을 머물렀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다. ① 세연지(洗然池):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판석(板石)으로 만든 보(길이 11m, 너비 2.5m의 돌다리)를 설치하여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이다. ② 세연정(洗然亭): 1637년 세연지 가에 단을 조성하여 지은 3칸짜리 정자이다. ③ 낙서재(樂書齋):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석실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다. 무민당(無悶堂)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 ④ 곡수당(曲水堂):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이다.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석정(石亭)·석가산(石假山)·연못·화계(花階)·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造苑)이 베풀어진 곳이다. ⑤ 동천석실(洞天石室): 곡수당 건너 산중턱 절벽 위에 지은 1칸짜리 집. 여기서 독서하며 사색을 즐겼다 한다. 유래(전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적 다툼으로 유배생활을 하게 외었다. 그가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에 이르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으로 옮겨 적과 대항하다가 항복한 후였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탐라(제주도)로 가는 길에 이곳 보길도의 산세가 수려함에 매혹되어 머물게 되었다 한다. 보길도는 그가 영조 15년(1637년) 51세 때 이곳에 들어와 여러 차례 출입을 하면서 별서를 짓고 13년 간 글과 정서를 닦으며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착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이 일대에 소은병 낭음계, 우운계, 독등대, 상춘대, 언선대 등 바위에 이름을 붙여 자연에 뭍혀 자연과 대화하는 조경을 경영하였다. 또 낙서재의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지어 곡수당이라 하고, 낙서재 건너 산 중턱 절벽 위에 한칸 집을 짓고 동천석실이라 하여 독서하여 선경에 노닐었다. 계곡을 따라 동북쪽으로 내려가면 계간을 판석보로 막아 계담을 조성하고 물을 돌려 방지를 이룩하고 방지 옆에 단을 쌓고 세연정을 지었다. 이곳이야말로 조선시대 별서조원의 아름다운 조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 유래 낙서재로부터 정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km 지점 해발 100~120m 에 위치하고 있다. 동천이라는 뜻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있고, 신선이 사는 곳도 되며, 하늘로 통한다는 뜻도 된다. 석실은 석조로 된 거실임은 물론이지만 산중에 은거하는 방이나 책을 잘 보존해 둔 곳이란 뜻도 있다. 1000여평 되는 공간에 석재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대 및 회황교 유적이 있다. 고산 유선도는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으며, 해 저물녁에 차를 끓이는 연기가 선경처럼 보인다하여 석실모연이라 하고 부용동 8경이라 하였다. * 동천석실 : (추가)윤선도가 1,000 여 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石門), 석담(石潭), 석천(石川), 석폭(石瀑), 석전(石田)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하였다.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龍頭岩)과 차를 끊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 낙서재 : 윤선도원림 중 하나로 격자봉 아래에 터만 남아 있었으나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낙서재는 보길도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유흥공간인 세연정과 달리 낙서재는 강학(講學)하고 독서하는 공간이었다. 윤선도는 낙서재 터 뒤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소은병(小隱幷, 朱子가 경영하던 무이산 대은병의 건너편 봉우리)이라 부르면서 주자의 행적을 따르고자 하였다. 낙서재 앞에는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저녁이면 고산은 거기에 앉아 달을 즐겼다고 한다. 67세 때는 거북바위 남쪽에 무민당(無悶堂)을 짓고 못을 판 후 연꽃을 심었으며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각각 한칸 크기의 동와(東窩)와 서와(西窩)를 지었다. 또한 82세 때에는 낙서재 동쪽 개천가에 곡수당(曲水堂)을 짓고 연못을 만들었다. 곡수당 옆으로 흐르는 시내에서 옥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낭음계(朗吟溪) 하였는데, 이로 인해 낙서재와 무민당, 곡수당 등이 있는 주변을 통틀어 낭음계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리주체
기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문화자원명
보길도윤선도원림
보존상태
보존상태 양호
상세수량
4
자원관리자
완도군
자원세부내용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가 머물던 역사적 장소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롭게 활용한 뛰어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보길도에는 1631년(인조 15)인 51세 때부터 13년간 거주하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지었고 현재 세연정,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세연정은 고산이 연회와 휴식을 취했던 공간이다. 독특한 기술을 적용하여 연못과 정원을 꾸몄는데 국내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낙서재는 고산의 주된 거주지이자 창작 공간이었다. 곡수당은 아들 학관의 거주지였고 동천석실은 사색과 다과를 즐기던 곳으로 부용동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자원소유자
완도군외3명
자원수량
1
자원입지
기타
지번주소
참고문헌
참고문헌- 2009 국립공원 역사문화자원 자료집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앨범 네이버 백과사전
최초모니터링년도
2010
탐방프로그램활용여부

상세 시스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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